서운을 넘어 분노로
어제 저녁,
아홉시를 조금 넘겨 고스방이 저녁을 먹으러 왔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의자에 앉아 티비를 보는지라 토요일 저녁에 온 식구가 다 모여 있기도 힘들다 싶어 찜질방에 가 보자고 내가 제안을 했다.
역시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고스방.
턱주가리 밑에 조지앉아서 다리를 주물러 주네 어깨를 두드려주네 하면서 온갖 말로 구슬려도 티비 보는 것이 더 좋다며 주저 앉는다.
그래서 흥! 지금부터는 가자고 사정해도 안 갈테이까네 하며 핑 돌아져 부엌으로 오니까 그제서야 그렇게 가고 싶다면 가자 이러는 것이다.
속으로 빙긋이 웃으며 저렇게 뻗대고 가면 좋은가..하고 목욕도구며 챙기는데 고스방이 아이들 방으로 가더니 아이들에게도 같이 가자고 한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순순히 따라가 줄줄 알았던 아이들이 둘다 도리질이다
하나는 생리가 시작되었다고 고개를 흔들고, 한 놈은 무작정 가기 싫다는 것이다
중2가 되니 몸에 생기는 변화도 있고 평상시 아버지랑 목욕을 자주 가지 않으니 뜬금없이 가자는
찜질방에 아들놈은 덜컥 한 발 물러서고 만 것이다.
황간에는 찜질방이 없고 김천까지 가야 있다
이왕 차 가지고 가는 것 식구들 다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들을 윽박지르고 끝내 가지 않겠다고 이불 덮어 쓰고 누워 버리는 아들놈의 행동에 고스방은 화를 내려고 한다
으이고 내복에 찜질방은 무슨..속으로 이리 생각하고는 내가 고만 됐다고. 안간다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하고는 주섬주섬 챙기던 것들은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그렇게 갖다 놓고 부엌 정리하고 세수하고 들어와 자려는데 속으로 부아가 확 치민다
에미가 그렇게 가고 싶어 같이 가자는데 자슥놈은 싫더라도 실쩌기 따라와 주면 좀 좋은가. 그라고 스방은 또 어떻고. 까짓 마누래가 가고 싶다고 그렇게 저녁내도록 아양을 떨었으면 저거시 오늘은 억시기 가고 싶은갑다 하면서 모른척하고 델고 가주면 어디가 덧나냔말이다.
꼭 자슥놈 앞세워 등밀어줄 사람 가야 목욕을 가냔말이다.
가만히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생각하니 생각할 수록 서운하고 서운함은 이것저것 그동안의 서운함으로 굴러다니더니 아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말았다. 결국 베개닢을 적시며 꾸역꾸역 눈물이 쏟아진다. 한참을 그렇게 기침하며 몰래몰래 울고 있으니 딸아이가 들어온다
들어와서 엄마...왜 그래 하는데 대꾸도 않고 누웠다.
실쩌기 일어나 제 방으로 간다.
밤중에 비소리에 잠을 깬다
잠옷 바람으로 나가서 나락 쌓아 놓은 들마루에 포장을 내리고 무말랭이 걸어 놓은 것도 안으로 들인다. 감도 덮어 놓고 어머님 유모차도 비 안 맞는 곳으로 치워놓고 들어온다
잠이 싹 달아난다. 마루에 잠시 앉았으니 고스방이 깨서 나온다. 잠 안 자고 뭐해?
방에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는데 귓가에 대고 고스방 한 마디 한다
"찜질방 안 가서 골났어?"
골?
골 났냐구?
비 오는 소리를 밤새도록 듣는다. 서운함을 넘어 분노로 부글부글 끓는 나를 가라 앉히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