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사는 이야기

황금횃대 2005. 11. 17. 20:46

문학카페라 해서 너무 문학적인 글에 무게를 싣다보면 문학 못하는 내그튼 사람은 글쓰기 점점 힘들어져요. 그냥 오늘같이 등때기가 알게모르게 시릿시릿 해지는 날은 가을 무 하나 달큰하게 삶아서 그 물로는 나박김치나 담고 밀가리 훨훨 풀어 저어서 무시전이나 구워 먹으면 입 안 가득 고소함과 달큰함이 넘쳐나요. 그라고 무시를 좀 두껍게 썰어서 삶아 구으면 거 뭐랄까 푹 무른 무를 이빨로 지긋이 물어떼면 거 한없이 무 속으로 이빨이 박히는 느낌, 그러면서도 이빨이 뿌리까지 따뜻해지는 느낌까지 같이 와요.

이런 걸 안 꾸버 먹어 보니 모르는 사람은 영 모를밖에.

 

날씨가 많이 추워졌세요.

오늘이 황간장날이래요. 모다 김장한다고 촌 할매들이 젓국이며 새우젓에 미나리 배추 산다고 영감님 경운기까지 끌고서 장에 많이 나왔더랬어요. 어물집에는 간이 가스에 주전자 물이 설설 끓고, 오랜만에 장마당에는 잘 안 보이던 해물까지 나왔세요. 분명 중국산일거라는 생새우들이 배부른 플라스틱 소쿠리에 가득 담겨 있고 깐 굴도 비닐 봉다리에 물하고 같이 포장이 되서 날라르미 생선 난전에 얹혔어요.

얼마전부터 고스방이 오징어, 오징어 해쌌길래 오징어 얼마냐고 아주매한테 물어봉께로 두 마리에 삼천원래요. 그래서 네마리 오천원하고 달랑께로 이 아주매 절대로 안 된다고, 오징어 한 짝 가져와봐야 한 마리에 백원띠기도 안 되는데 그걸 그렇게 달라면 절대 못준다고 합니다. 날씨가 좀 따뜻했으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거 깎아서 사서 오는데 육실헐..왜그리 와달달달 떨리는지. 고만 육천원 주고 니마리 샀어요. 그거 오천원에 줬으면 목포 칼치라고 떼깔좋은 놈 있는데 그것도 두어 마리 샀을게고 꽃게도 나왔는데 어찌 등때기가 넓적하고 집게발이 크던지 그것도 좀 샀을낀데 오징어 한 마리에 하도 인색하게 해서 고만 어물전에 등 돌리고 돌아왔세요.

 

 

오늘이 제사래요

강구실 할무이제산데, 이 할무이는 시할아버지의 첫째부인이였세요.

아이도 하나 못 낳고 돌아가셨데요. 그 다음 할무이로 들어오신 분이 지금 아버님 형제분들을 다 낳으셨세요. 마산리 동산터 할아버지 산소에는 두번째 할무이하고 할아버지하고 나란히 누워 계세요. 강구실 할무이는 혼자 뚝 떨어져 생뚱한 산에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집에 아버님이나 고스방이나 이 할무이 제사는 참말로 지극정성으로 지내요. 애기도 못 낳고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외롭겠냐면서. 고스방은 이 할무이 산소 벌초가면 그 아래 생판 모르는 무덤까지 깨깟하게 벌초를 해 줍니다. 그래도 혼자 계신 것보다 이렇게 이우재 무덤이 있으니 할무이 덜 외로우실거라고. 그라고는 말끔해진 산소 두 군데다 담배까지 얹어 놓구 와요. 고스방이 가끔 내한테 호랭이처럼 괌 지르고 엄한 소리 해싸도 그럴 땐 얼마나 정이 뚝, 뚝, 묻어나는지...땀 찔찔 흘리고 예초기 내려놓고 쉴 띠 희끗해진 고스방 머리가 바람에 살랑쌀랑 날리는거 보면 참 기특해요.

점심 전에 갖가지 전을 부쳐놓고 이제 점심먹고 잠시 앉았네요.

이거 얼릉 써 놓구선 산적도 굽고, 조기도 굽고 나물에 탕국도 앉혀야해요.

 

 

예전에는 손아래 동서하고 같이해서 좀 덜 힘들었는데 동서가 학교 급식하는데 덜컥 취직을 해뿌리는 바람에 하루 종일 혼자해요. 첨에 나한테 직장 갖겠다는 말도 안하고 혼자 가 버릴 때 배신감에 몸을 떨었어요. 씨이팔 ...할래다 욕은 내가 싫어하니까 안하고 괜히 입이 댓발 나와서 그릇 부실 때 우당탕탕 집어 던지고 그랬세요. 그렇게 하나마나 결국은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이젠 고만 포기했어요

인자는 혼자서도 잘해요.

 

점심 먹고 잠깐 앉았으니 우체부 아저씨가 마당 안으로 들어와요

대개 소포가 없으면 그냥 삽잘걸에 우체통에다가 우편물 꽂아 놓고 그냥 가는데 오늘은 도장 받아가야할 뭐가 오나봐요. 현관 문을 열다가 아저씨가 흠칫 놀랬을거라요. 집안에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풍겼으니 꼬신내가 왕동을 할거 아네요?  책이 왔어요. 아저씨가 내미는 종이에 잘 받았다고 머뜨러지게 내 사인을 했세요. 방에 와서 가위로 봉투 주둥이를 오래 보니까 책 맞아요

저번에 물파아트센터에 전시회 하는거 못 가봐서 조금 서운했더랬는데 막 내리는 날 내가 아는 서울의 김씨아자씨가 나 대신 인사동 간 김에 들렀대요. 내 이름을 이야기 하고는 통화를 하고 책을 받았다면서 소포로 바로 보내왔세요. 소포 속에는 <윤산 강행원 한국 문인화>라는 시화집이 있고, 팜플릿이 있고 엽서도 한 장 있네요. 그라고 작은 책자 속에는 김씨아자씨의 짧은 메모도 두 장 들어 있습니다. 살면서 큰 선물을 받아도 기분 좋지만, 이렇게 보내주는 책자 속에 작은 메모를 우리는 더 좋아해요. 이 어쩔 수 없는 정서를 아는 사람은 알거구만요.

 

고스방이 따라 들어와요. 여편네한테 수시로 오는 우편물과 소포에 대해 조금 의아해하고는 있지만 벨로 신경은 안 써요. 따라 들어오길래 얼른 김씨아자씨 주소가 적힌 봉투는 책꽂이 위로 자연스럽게 올려놓고 화첩을 보여줘요 드르륵 넘겨보더니 쪼뱅이 여편네한테 이런게 소용이 있나? 개발에 닭알이지 하며 한 마디해요. 하기나말기나 나는 그림을 봅니다. 수세미그림이며 포도, 새. 개구리....온갖게 다 있어요. 화제(畵題)로 쓰여진 짧은 글도 봅니다.

 

그거 말고도 또 봉투가 하나 더 왔어요. 진주 사는 아는 언니가 있는데 언니 동생이 무용을 해요. 저번에 초겨울 접어들 때 산사에서 춤공연이 있었는데 언니가 초대글을 날보고 좀 써 달래요. 그래서 그런거 잘 못쓰는데 그냥 썼어요. 어떻게 썼냐구요?

 

벗꽃이 눈꽃처럼 날리는가 싶더니

어느 새 뜨락엔 낙엽이 수북하고.

꽃도 잎도 시절을 좆아 피고 지는 사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무엇을 하였을까.

 

깊어지는 가을

옆구리에 슬몃 치고드는 바람이 선뜩하니 가슴까지 스며들 때

여기 작은 절집 마당에서

춤사위가 꽃으로 피어납니다.

 

오셔서 첫추위부터 간단하게 이겨낼

힘, 얻으시기 바랍니다.

 

 

약간 수정을 가했지만 거의 저런 내용입니다 헤헤

고스방이 읽어 보더니 팜플릿을 휙 집어 던지며

"벨 내용도 없구마이"

"치치풍.. 그럼 뭐 사는기 벨거 있을라구"

 

그래도 돌아서는 고스방 뒷꼭대기엔 흐믓함이 묻어 있어요 헐...

 

그렇게 추운 하루가 지나가고 있네요

탕국이 끓어요

내일 봐요^^

 

 

 

*오늘은 내가 글을 두 개 썼어요. 근데 비공개로 돌려놨어요. 참 가슴아픈 내용이고 우리 집구석 이야기라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도 나중에 내가 다시 읽어 볼라구 올려는 놨어요. 참 가슴이 답답하고 그래요. 나중에 객관화 시켜서 함 얘기해 볼라 해요.

 

그라고, 담주 월요일에 신나는 일이 있어요. 여기 동네에 토끼띠 계모임을 하는데 목포 유달산으로 놀러 간데요. 딸랑 열두명 가면서 대형 버스 빌려서 하루종이 관광버서 바닥이 둘러 꺼지도록 놀 모양이여. 나는 들고 뛰는건 둘째고 목포가서 플라이급샘하고 아우좋아샘 만나는 일에 더 혈안이 됐세요. 시간 조율도 마쳤고, 포도주 두 병 얌전하게 담아서 그녀들을 만나러 갑니다. 살면서 이런 좋은 일도 있네요 히...부럽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