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5. 11. 19. 09:30

친정으로 내 형제는 삼남 일녀예요. 당근 내가 맏이래요

맏이는 타고 난다고 한다던데 바로 밑에 남동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건 좀 맞는 말긋어요

뭐 짜다라 맏이 노릇을 잘 한다는기 아니고 그냥 분위기가 그렇다는 이야기죠

저번 추석에 친정갔더랬는데, 둘째가 좀 말썽이라. 추석 전날 와서 동서들끼리

이야기 하면서 부침개도 굽고 그러면 좀 좋아요. 둘째 올케는 물론 그러고 싶었겠지만

동생이 추석 전날까지 술을 마시고 늦게 왔으니 명절날 모일 때는 다 같이 모여야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근데 올케 혼자 아이 델고 오자니 그랬을것이고, 사실 좀

부애도 났겠지요. 서방이란 놈이 일찌감치 서둘러 집에 갈 생각은 않고 술을

퍼마셨으니. 추석날 아침에 와서는 간신히 차례를 지내고 내가 오후에 친정에

도착했을 때는 처갓집에 간다고 준비를 하더라고요. 근데 올케 얼굴이 여엉 부어터졌어요

뭐라 말도 못하고 나도 조금 마음에 못마땅한게 있어도 그냥 좋게 말했어요

그날 저녁 막내랑 큰 올케랑 같이 MBC영화관에 가서 강동원하고 하지원 나오는

형사라는 영화보고 집 앞 아리아나에서 맥주 한 병하는데 큰 동생이 어디 갔다가

우리랑 자리를 같이 했어요

 

어디갔다 오냐고 물었더니 상가집에 다녀온다면서 벌써 목소리에는 취기가 약간

붙어 있었세요. 친구 병규랑 같이 왔는데 병규는 동생과는 부랄친구라 한 쪽 눈 반만

껌벅거려도 뭔 말인지 알아 듣는 좋은 친구래요. 병규가 같이 와서 날 보고는

"어이구 누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세요"하고 털털한 목소리로 그 큰눈을 부랄부랄하며

인사를 합니다.

 

동생친구들과는 졸업하고 여름 캠핑도 같이 하고 그랬어요. 나는 내 친구들하고 가고

지들은 지들 친구하고 같이 가는데 야영을 한다니까 누나들 보호도 할 겸...함씨롱 따라

붙어서는 문경세재로 월악산으로 간 적도 있었세요.

 

그런 동생이 큰 동생인데 그 놈이 맥주 두 어병 더 먹더니 그래요

내가 오늘 제수씨(그러니까 둘째 올케)하고 동생 불러 놓고 한 마디 했다하면서 이야기를 꺼내요

둘째네가 맨날 엄마, 아버지 생신 때도 일찍 안 오고 항상 아침 먹고 치우면 그제서야 오거나

아니면 올케는 안 오고 동생하고 조카녀석만 델고 와요. 큰 올케 보기 좀 미안하지요

사람이 시건머리 멀쩡하면 그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게 딱 기본이 나올껀데 그걸

대학을 나오고 선생을 하면서도 모릅니다. 아니면 모르쇠하는지도 모르지만.

 

친정가서 은근히 둘째네 이야기 들으면 나도 슬그머니 부아가 나와요

그래서 가끔 올케한테는 신경써서 편지도 보내고 하는데 나도 편한 마음이 아닝께로

큰 올케한테 편지쓰는것 처럼 편하질 않아요. 큰 올케는 내가 뭘 해도 이해하고 필요하면

부탁도 하고 아주 동생하고 연애하던 시절부터 자주 만내고 어울리 다녀서 내 동생보다 실제로는

더 좋아요. 형편이 안되서 못해 그렇지 뭐든 갖다 주고 싶고 그래요.

 

그런데도 내가 좀 바빠 엽서나 편지를 안 보내면 둘째 동생놈 술 먹고 전화 한번씩 하면 왜

요새는 편지를 안 보내느냐고. 애기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어이구 속터져. 어째 편지는 나만 보내는거냐 니들은 좀 하면 안되냐? 하고 은근히 말해

봅니다. 그러면 자슥이 말을 딴데로 돌려요.

 

속터지는 둘째네 말고, 막내 얘기할랬는데 ㅎㅎㅎㅎ

 

막내하고 나하고는 딱 여덟살 터울이래요. 여덟살이 차이가 나도 나하고 책은 같이 읽고 생각하는 방향도 비슷해도 나는 막내가 참 좋아요. 맏이는 그저 듬직하니 그렇고 그 애는 말 수가 좀 없으니까 살가운 맛은 좀 없어요. 근데 막내는 막내라..자분자분 이야기도 잘 하고, 취미가 궁중요리라 궁중요리 자격증을 따서는 가끔 요리도 만들어주고 그럽니다. 막내가 총각 때는 얼마나 아가씨 단속을 잘 했는지 절대 집으로 전화를 안 했어요. 그래도 우린 장가 간다는 말 나올 때까지는 여자친구가 전혀 없는 줄 알았세요. 가끔 유도질문을 하면 자기는 장개를 안 갈거라고 쐐기를 박았더랬어요. 만일...아주 만일 가게 된다면 한 마흔 넘어서 저기 나라땅 말단에 낚시점 하나 내고 살 때라고 느믈느믈하게 말해서 우리가 어이고 저놈 장개 진짜로 안간다하면 어쩔고 하면서 울 엄마가 걱정을 많이 했세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도 힘 안들이고 잘 하고, 그러다 아가씨도 얄야브리한 아가씨를 구해왔세요

사귄다는 말을 들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결혼한다고 해서 우린 배신감에 몸을 떨었세요

각시 되는 사람은 얼마나 또 말을 잘 하는지 둘째와는 좀 대조적이래요. 근데 가마이 봉께로

입으로 일을 다해. 어이구...그것도 좀 그려.

 

그 막내 동생이 지난해 이맘 때 둘째 딸을 낳았는데 오늘이 돌이라네요

애기 이름은 가희해요

첫째 딸이 가연이고 둘째는 가희라고 지었데요

얼마나 볼살 통통 귀여운지 우리집 식구들은 아이가 귀찮다고 깨갱거려도 볼살 조물락거리느라

아주 넋이 나가요

 

전에 한 번 창원 즈그집으로 초대를 해서 온 식구가 갔는데 얼마나 알뜰하게 사는지 냉장고 문 열어 보고 놀랬어요. 내야 워낙 큰 살림이다봉케로 구석에 굴러다니는 음식재료가 부지기수인데 그집에는 진짜 한 개, 두 개 단위로 사는거 같아. 아이고 젊은 사람이 살림 사는게 틀리구나 했어요

 

둘째도 딸이라고 막내동생이 처음 낳았을 때는 엄청 서운했던가봐요. 죽을똥살똥 낳은 어마이한테는 수고했다는 말도 한 마디 안하더래요. 그래서 막내 올케는 그게 또 두고두고 서운한가 가끔 깽장거려요.

 

그래도 내가 고혈압 진단 받으니까 수시로 전화해서 안부 물어보는 막내동생.

엄마, 아버지한테도 전화를 자주 한다니 멀리 떨어져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살가운 정은 새록새록 솟아 납니다. 오늘 친정 가서 동생들 만나 술 한 잔 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