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김장해서 죽죽 찢어 밥하고 먹으면 육실허니 맵죠? 그 때 이 곶감 하나 깨물어 먹으면 진짜 죽음>
오늘 김장했어요
지난 월요일 목포 놀러 갔다 오니까 차고 안에 배추를 뽑아다 놨아요 시동생이.
배추가 얼어서 꼴이 형편이 없어요. 그래도 어쪄? 농사 지은겅깨로 그걸로 담아야지요
어제 제사지내고 아침 나절 후딱 치와놓고는 배추 다듬었어요
자잘헌 포기까지 다 다듬으니 배추쓰레기가 몇 삼태기나 나옵니다.
언 배추를 만지니 어찌나 손이 시려운지 손가락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당께요
고무다라이에 열 포기씩 담아서는 부엌으로 일곱번 갔다 날랐시요
계단 오르락내리락하는기 어찌 힘들든지...놀러 갔다온 후휴증에다 전날 제사 지내니라고
죙일 부엌에 서 있었지요.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자꾸 앉아 쉬고 싶어요
배추 절여 놓고 새벽까지 기다려 씻고 나니 세시가 다 됐어요
발이 차가운 물에 담겼으니 스방 옆에 가서 눕지도 못하고 아이들 방에 와서 누웠으니
잠이 싹 달아나요. 눈까풀은 무겁고 아픈데 발이 시릿시릿하니 잠이 옵니까?
이럴 때 애인이 좋은 겁니다.
"발이 시려서 잠이 안와.."하고 문자 보냈더니 곧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어떡하면 잠이 오겠냐고 얘기하길레 자장가를 불러 달랬더니 허허..합니다
자장가는 좀 뭣한거 같아서 옛날 이야기를 해달래니 열일곱 나이때 오밤중에 강가에 목욕하러 가다가 바위 위에서 통곡하는 여인을 만난 이야기를 합니다
하도 얘기가 썰렁해서 잠이 오긴 옵디다. ㅎㅎㅎ
보통 한 접 정도 하는데 작년 김장 감치가 아직도 한 통 남았어라 김치 냉장고 속에.
그래서 좀 적게 한다는 것이 오늘 치대서 넣어보니 맹 작년 만큼 했네요
혼자 하려니 죽을 맛입니다. 예전에는 동서랑 같이 했는데 동서가 직장 다니고부터는 내가 일이 더 많아져서 한번 서운한게 낫지 싶어 느그꺼 느그해라 하고 딱 떼네줬습니다. 첨에는 좀 서운했을거래요. 그래도 내가 힘들어 안돼겠어요.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영악합니다.
어머님은 뭔 김치 욕심이 그리 많으신지 다 하고 치우고 난 뒤에 무 남은 걸루 또 무 김치를 두 통이나 담아 놓습니다. 촌에는 배추김치도 겨울 양석이라..
이제 눈 내리는 밤이 오면 동치미 국물 떠다가 군 고구마와 같이 먹고, 찰떡 녹여서 언 홍시 트개서 찍어 먹고....그렇게 살 겁니다.
겨울 밤
-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 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한국일보', 19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