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식으로 놀기
나는 1963년 1월 30일에 태어났다
음력으로 정월 초 이랫날 엄마의 모태를 떠나 으앙 소리와 함께 지태에 안겼다
지태에 안긴지 마흔 세해째가 되었다
모태에서 열달여를 살 때도 주는 것 받아 먹고 살았듯이
지태에 안겨서도 여전히 자연이 주는 것들을 받아먹고 살고 있다
스물여섯, 그러니까 1989년 1월 22일에 결혼을 했다
진눈개비가 실실 내리는 날, 엄마는 진눈개비 속에서 반짝 울으셨지만 나는 하냥 좋았다
어제 밤, 뜬금없이 장롱을 뒤지다가 결혼 때 웃티와 같이 한 한복을 보았다
십수년을 전혀 입지 않았으니 개어진 선이 납작 눌리다못해 아주 기계주름처럼 단단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저고리를 다리고 치마를 다린다
딸이 와서 보더니 그걸 입을려구? 하면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그려, 이번 설명절에 외갓집갈 때 이거 입고 갈려 해"
"이렇게 촌스런 한복을 입고 어딜간다구? 엄마랑 따로 가야겠다"
아이들 눈에는 꽃분홍 저고리도 여린 풀빛 치매도 모두 촌스러워보인다.
옷을 다 다리고는 입어 본다고 훌떡 벗어제끼니
딸이 막 웃는다. 저 공포의 뱃살 좀 봐!
<그러엄..딸아, 세월이 얼만데..>
내가 평생 살면서 드레스 입어 볼 일이 있겠는가
속치마를 입고 스카프를 둘러서는 드레스라고 하니 울 딸이 사진을 찍으며 뒤집어진다.
발 밑에 떨어진 치마와 저고리를 입는다
연두저고리 다홍치매 웃티가 한 벌 왔는데 엄마가 본견 옷이 없다고 한 벌 더 해주셨다
얼마전 불이 난 대구 서문시장에 가서 옷감을 고르는데 꽃분홍 색깔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
저걸로 저고리를 하고 싶어요
그럼 치마는 푸른 색이 낫겠네
포목집 주인아지매가 능라보다 더 고운 웃음을 내리며 색깔을 맞춰주었다.
짠!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에서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
저렇게 옷을 입고 위에다 분홍두루마기를 입고 서울을 가는데 고스방이 새마을 표를 끊어 주었다
그 때만해도 어지간하면 새마을 타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잘 안 입던 한복이라 사람 많은 무궁화타고 가면 피곤하다며 편히 갔다오라고 새마을 표를 끊어주는데 그 배려가 너무 고마와서 가늘게 눈꼬리를 찢으며 웃어주었다.
지금?
요새야 그것보다 훨 비싼 급행열차를 타고 혼자 왔다갔다하면서 내 배포가 이리커졌구나..한다.
딸아이가 사진을 찍어주면서
"엄마, 꼭 저 위쪽 동네에서 남파된 간첩아줌마 같어...잠깐만..."
그러더니 이렇게 분장이 해 놓는다
시커먼 안경도 쒸워놓았는데 그 사진은 너무 웃겨서.
딸과 둘이서 이렇게 80년대식을 연출하며 얼마나 웃어놨던지
저 비릉빡에 붙은 꼬부라진 종이는 뭐냐면...
그 유명한 노자선생의 <상선약수上善若水> 편이다
살면서 디게 부애나는 일이 있으면 배깔고 누워 저걸 쳐다보고 읽는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夫唯不爭, 故無尤
날이 바뀌고 해가 밝아 옷 갈아 입는 스방 옆에 앉아 농담을 받아주며 웃고 있는데
내 얼굴을 손으로 돌려 보며 고스방 하는 말
"영 밉상은 아니구만.."
오늘까지 꼬박 십칠년을 채우면 같이 살았는데 여편네하고 산 소감 한 마디가 저거다
<영 밉상은 아니고만....>
나도 그려 고스방!
이건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