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그렇게 갈라지듯..
지물포에 가서 문종우를 사다가 침 발라 자르면 딱 요만한 크기의 종이가 열두장 나오네
전지 두 장 사다 자르면 합이 스물 네장이라, 그걸 잘라서 파일 속에 넣어 두면 부자가 된 느낌이다. 츠자 때 엽서를 많이 쓸 때는 월급 타서 엽서 서른장쯤 사 가지고 핸드백 속에 넣어 두면 그 때도 마음이 부자였더랬지. 화장품, 머리핀 이런 건 눈 씻고 볼래도 없었어. 그런데 나이가 마흔 넷쯤 올라 차니 핸드백 속에 품목이 바뀌어.
관제 엽서는 이제 눈에 물파스를 바르고 찾아봐도 없고, 대신 자잘한 화장품 샘플이 들어 앉았네
틈만 나면 읽던 시집도 없고.
생이 이렇게 메말라 간다네. 삽으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더니 메말라 가는 것들의 모습이 그렇게 대책없이 부피를 불려가네.
겨울이란 원래 그런거지.. 느슨허니 시작되었다가 혹독하게 휘몰아치고, 또 한 번쯤 숨돌려 놓았다가 다시 닥달하듯 달려 들고. 지금이 그렇네 닥달 하듯 창문을 흔들며 찬바람이 집구석을 휩쓸고 다녀.. 마음이 쓸쓸하기 전에 편지를 쓴단다. 사람마다 자신이 하는 일 중에 마약같은 위로가 있는 일이 있지를. 나는 편지 쓰는 일이 그것과 같어.
혼자 사는 살림이 어떠하뇨?
이젠 반반하니 질이 나기 시작했다고?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니 인생에 어떤 잔소리도 보탤 수가 없다. 그리고 할 마음도 없고.
그저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랄 뿐이재.
며칠 전, 인사동 갔다가 전주지업사 앞을 지나가는데 붓이 많이 걸려 있기에 니 생각을 했단다. 언젠가 서울 출장 간다기에 내가 세필용 붓을 사 오라고 했었지.
예리한 붓끝이 닳아서 글자를 쓰면 획이 갈라진다. 너와 내가 알고 지낸 세월이 그렇게 갈라 지듯...
2006.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