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6. 2. 3. 12:37

오늘 날씨가 좀 춥네요

요가 간다고 서둘러 설거지끝내고 머리카락에 물 칙,칙 뿌려서 사자갈기같던 머리카락에 곱슬모양을 좀 맹글고 요가매트 을러매고 바람 속으로 발을 내딛입니다

아, 찹찹한 바람.

한 동안 따뜻했죠? 명절 쉬라고 그랬는지 어쨌는지 속내야 모르겠지만, 날씨가 명절 쇠는데 좀 도와주었습니다. 땡큐 날씨.

 

설에 부쳐 놓은 부침개도 슬슬 떨어져 가고, 나물 반찬는 이제 숙주나물만 한데 뒤엉겨 두어 젓가락 남았을 뿐. 아, 떡국이 있네요. 물에 담궈 놓았으니 저녁이나 점심에 떡국 메뉴가 자주 밥상에 오르겠습니다.

 

시어머님하고 같이 살다보면 사람이 은근히 꼬이는 구석이 있어요

떡국을 끓일 때 어머님은 계란 푸는 방법이 나하고 틀려요

나는 그릇에 탁 깨서는 젓가락으로 흰자, 노른자를 훼훼 저어서 떡국이 끓으면 넣는데 어머님은 절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계란의 앞뒤 꽁무니를 젓가락으로 톡톡 깨서 구멍을 만들어 하나는 바람 들어가는 구멍, 하나는 계란 나오는 구멍..요렇게 만들어서는 떡국이 끓으면 냄비 위에서 솔솔 떨어트리지요. 나는 확 부어서 저어버리고.

이것만 봐도 성격나오지 않습니까?

 

어머님이 아무리 저에게 당신처럼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하셔도 저 역시 절대 고치지 않고 내 방식을 고집합니다. 해마다 떡국을 끓이면서 해마다 변하지 않는 방법들을 보는거지요. 사람의 고집이나 고정된 방식은 참말로 바꾸기 힘듭니다.

 

밖에 나가니 슬쩍 어제밤 뿌린 눈들이 귀퉁이로 몰려서 하얗습니다. 새로 물들이 얼기 시작했고, 금상교 다리를 건널 때는 머리가 다시 헝클어져 귀신 산발머리가 되었어요. 강은 아니지만 얼어붙기 시작하는 하천을 보는 일은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해마다 겨울에 이렇게 시린 바람을 온통 이마에 느끼면서 몸을 오그려 걸어가며 속이 트인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시집 온 후 십팔년째 이 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

잠깐만 시절을 되돌리면 지난 시간 한 때 이 다리를 건너던 풍경들이 떠 오르지요

고등어를 사가지고 오거나, 무거운 장바구니를 양 손 번갈아 들어가며 얼굴을 시뻘겋게 만들며 씩씩거리며 다리를 건너거나, 등판이 다 파인 옷을 입고 다방아가씨들이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리를 건너가는 풍경이나, 혹은 다리끌 안성식당 기석이 삼촌이 오봉에 한 상 차려 밥 배달을 나가며 나를 보고 실쩍 쪼갤때의 풍경이거나....그렇습니다. 풍경은 길지 않는 다리를 건너는 사이에도 수백편을 상영하고도 남습니다.

 

면사무소에 도착했어요.

이층으로 올라가기전 계단 옆에 있는 전신 거울을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번 들여다 보고 계단을 올라가요. 계단이 꺾어지는 벽면에 또 전신 거울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조금 전에 봤던 그 얼굴을 한 번더 들이밀고 쳐다봅니다. 누가 그랬지요. 여자는 거울이 열 개 있으면 열개의 거울을 다 들여다 보고 되돌아와서 한 번 더 보고 간다고. 그게 여자라고. 가끔 오래 전에 들은 그 말을 그렇게 두 번씩 거울을 볼 때마다 생각하지요. 그 말이 생각나면 그 말을 했던 그도 생각을 합니다.

 

한 때는 열심히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이제는 멀어진 사람입니다.

아침에 저어기 아자씨의 전화 속 이야기처럼 세월이 흘러가듯 사람도 흘러간다고.

가끔은 그게 슬프다고 말씀을 하시네요.

나는 그게 슬프지 않습니다. 바락바락 내 턱밑에서 모여있는 것 보다 그렇게 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좋습니다.

 

블로그에도 그렇습니다. 첨에는 열심으로 들여다보고 건네던 낱말들이 서서히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물결이 보여요. 물 속에서 발을 첨벙이며 노는 것도 좋지만 멀리서 물결이 흘러가는 것을 감`잡을 때, 그것도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사는게 그래요. 그 속에 들어가 아웅다웅 하다보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가는지 그냥 허둥대기 바쁜데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아하! 하고 바보 도 터지는 소리 한 마디가 저절로 나오지요. 삶이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마음 넉넉해져서 머할라꼬? 하면 할말은 없습니다.

 

어제는 울 아덜놈이 게임 아이템을 판다고 날 보고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네 전화번호를 빌리자네 법석을 떨더라구요. 나는 그깟 허구의 게임아이템을 누가 현금 주고 산다고 그러냐구 했는데 글쎄 그게 아닙디다. 게임머니 일억오천만냥이 현금으로 이만팔천오백원으로 거래가 성사가 됩디다. 놀랬어요. 아바타 옷을 돈을 내고 사는 것까지 그럭저럭 이해를 했는데 게임에서 개인간에 그렇게 현금거래가 된다는게 ...지금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 그냥 단번에 거절 당하고 맙니다.

나는 내 자슥놈이라도 무서워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하고.

담부터는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얘긴 해 놓았지만..

 

지금은 한문 방학숙제 한다고 글씨를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다.

한자 한 자 쓰는데는 한 없이 어눌하고 느려터진 저 손가락이 게임키를 누를 때는 바람이 입니다.

세상의 용머리는 어딜 향해서 질주를 하는지..아찔해지는 날입니다.

그러나 아찔하던 어찌됐던 점심 먹을 시간이라서, 김치 넣고 멸치 바숴넣고 갱시기나 끓여 먹어야겠어요. 뜨끈뜨끈한 김치잎사귀를 이뿌리가 깜짝 놀래도록  씹어서 목구멍이 뜨겁도록 삼키다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