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일상의 노란 구르마

황금횃대 2004. 4. 12. 16:49
맞이 대청소 쓰레기를 치우느라 노란 외발 구르마에 잡다한 것을 싣고
동네에서 벗어난 자두밭으로 간다. 팔백여평쯤 되는 자두밭은 고속도로공사로 인해
삼분의 일이 편입되고 나머지가 남았다
돌돌돌 발통 굴러가는 소리에 리듬을 싣고 쓰레기를 실어 나른다
또 다시 봄이 왔다는 증거로 철둑비얄에는 제비꽃이 하나 둘 보라색 그 이쁜
얼굴을 내민다. 한철 장사 '제비꽃 여인숙'간판을 내어 걸 모양이다.
일명 장구채풀도 민들레 앞서 꽃을 피웠다. 진분홍 꽃이 대롱처럼 달렸다
듬성듬성 불지른 자욱 밑으로 확연한 대비색을 이루며 쑥들이 돋아나고
제대로 캐 먹지도 않았는데 냉이는 지천으로 피어나 드디어는 쇠어버린 몸매로
크게크게 벙글었다. 머잖아 냉이꽃을 피워물겠지

쓰레기를 버리고 자두나무 순쳐놓은 것을 서너다발 빈 구르마에 얹어 온다
비록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나무 다발은 어느 듯 수분을
하늘로 날리고 바스락 말라있다. 머잖아 장을 뜨면 달여야 하는데 그때 소용이
되리라. 촌구석에 살면서 나무없는 것도 큰 흉이라. 첩첩 산중은 아니지만
소소한 소용을 위해서 작은 나뭇단을 옮겨 놓는다. 밭 가운데서 가장자리로 들어
낼 때는 한 없이 무거워 질질 끌리던 나뭇단이 봄볕에 많이도 말라 들어보니
부피에 비해 가뿐하게 들린다. 말라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잠시 봄볕아래
서성이다.

돌돌돌....외발 구르마는 예의 그 경쾌한 굴림의 소리를 내며 비포장 농로길을
스스럼없이 굴러간다. 따라가는 내 발걸음이 바쁠 따름이다. 철길로는 서울로 가는 새마을 열차가 찰나의 움직임으로 지나간다. 찰나를 관통하는 내 눈길이 출발한
역을 읽고 있다 마산....


마산에는 별다른 추억이 없다. 그저 친구 내외가 조용히 살고 있다는 것뿐.
그러나 추억에 반하여 사람에 대한 느낌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잠시 흙길을 걷고
있다는 현실을 잊게하고 그와 그의 식구들과 함께한 시간의 기억 속으로 빠져
든다. 이년전..직지사에서도 만났지..하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분도 큰아부지가 굴다리 아래에서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올라온다.
먼 빛에 서서 나는 꾸벅 인사를 하는데 그는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땅을 향한
눈길에 조금치의 요동도 없이 계속 가는 걸음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그는 사람의 입모양을 비끼운 눈길로 가늠하고 늘 대화를
한다. 이 분도 큰아부지 이야기도 나중에 하고.


황사가 멀리 중국땅에서 인사처럼 온단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때기나발치고 하늘은 쾌청청 지화자 좋다다.

'마늘 알 굵어질때면 언제나 이렇게 가물단 말이야'
제법 농사꾼 같은 씨알도 안 먹히는 말 한 마디 뱉으며 고샅을 돌아간다



상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