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도 안 먹는 고스방
에비 마음이란게 그렇지?
황금횃대
2004. 4. 12. 16:54
친정 큰 동생 아들놈이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 갔다
위로 누나가 있고, 아래로 땡삐같은 남동생이 있어
그야말로 그 아인 장남이라도 낀 세대로 자랐다
제 동생이 워낙 때구쟁이라 그 아이 치닥거리에
친정올케는 그 아이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어릴 때 달래기 쉽다고 노상 비디오를 틀어 주었다
말이 늦어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어휘력은 많이 늘었다
그러나 티비 보는 습관은 고치질 못햇다
친정에 가면 요즘 아무집이라도 그러하듯 거실에도 티비
할아버지 방에도 티비, 제식구들 방에도 티비...종일
집구석에 티비 세 대가 왕왕 소릴 질러가며 하루종일
소리와 광고를 토해 내었다
아이의 언어는 생활 언어에서 동떨어진 만화영화의
대사를 닮아 가고, 머리 속에서도 생활가운데 일어난 일들이
자연스럽게 만화영화로 연결이 되어 사고의 중심이 만화영화
분위기로 돌아가 버렸다. 후회에도 늦었고, 고치기에도 늦었다
조금이라도 티비 소리가 듣기지 않으면 기어이 티비를 틀어 놓아야하고
자기 안으로 숨어버리는 시간이 많았다. 무단히 대문을 나가 아이가 없어
찾아 보면 트럭 뒤에 앉아서 울고 있다. 왜 우냐고 물으면 슬퍼서 운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오면 그럴 수 없이 좋아하는데, 시어머님이 아이에게
너희 집이 좋으냐 고모집이 좋으냐 하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고모집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집에서는 동생이 잘못해도 날 야단친다고
그래서 엄마도 싫다고 한다. 그랬다가 눈치가 있어 아니 엄마도좋아 한다.
초등학교 일학년에 넣어 놓고는 여간 걱정이 아니다.
집에 올 때는 실내화를 갈아 신고 와야 하는데 그걸 그냥 신고 집에 오질 않나
가끔 뜬금없이 혼자 자기 이야기를 해서 선생님이 의아해 하고
제 에미가 걱정이 되서 선생님께 성장 이야기와 집에서의 습관을 이야기 하고서야
선생님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어느날은 수업시간에,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다고는 일어나서
자기집에 옛날에 불이 났다고(전혀 뜬금없는 말이다. 불 난 적도 없다)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하더란다. 선생님이 에미의 귀뜸이 없었다면 얼마나 황당해했겠는가.
그런 저런 이야기를 공사일 때문에 제주도 가 있는 제 애비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내동생 즉, 아이 아빠가 밤새도록 생각을 얼마나 하였는지 선생님한테 손수 편지를
써서 보냈단다. 무슨 사연이 그렇게 길고 길었던지 두 장이나 써서 보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선생님이 올케에게 하면서 아이 아버지가 참 자상하신가봐요 하더란다.
첫딸은 똑똑하고 제 앞가림을 하여 조금의 걱정도 없이 학교에 보내다가, 둘째놈이 그렇게 엉뚱한 행동을 한다니 조금은 놀랬으리라. 평소의 성격과 행동은 생활 속에서 늘 보아오던 것이라 그려려니 하고 넘어 갔을터인데, 학교에서 돌출되는 아들놈 행동에 애비는 밤새도록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연필을 들어 편지를 구구절절 써 내려갔겠지. 애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한 집안의 정서를 살펴보자면, 그 집 식구들이 쓴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남동생 셋과 나, 이렇게 삼남 일녀의 환경에서 자랐다. 내가 장녀이니 동생들을 은연중에 부모처럼 생각하게 된다.
이젠 모두 분가하여 제 여우살이를 꾸려나가지만, 예전에 우린 편지를 잘 썼다
하나 둘씩 시차를 두고 떠난 군대생활에 집 소식을 보내주느라 편지를 썼고, 내가 시집 오고 난 뒤에는 동생들이 간간히 편지를 써서 내게 보내 주었다
큰 동생 군대 갔을 때는 내가 하루걸러 한 번쯤 편지를 썼을 거다. 지금도 가지고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낸 편지가 두툼하게 한 묶음은 족히 되었으리라.
그렇게 저렇게 오간 형제들의 편지를 읽어보노라면, 한 솥밥을 먹고 한 어미 밑에 품어져 자란 병아리같은 자슥들은 어찌이리 생각이나 필체나 문장들이 닮았는고...저절로 감탄이 내질러지게 흐르는 정서가 같다.
문장이 흐르며 내쉬어야 할 쉼표의 마디까지 부지불식 호흡이 같아 읽어도 읽어도 숨이 차지않고 자연스럽다.
선생님께 두 장의 편지를 쓴 남동생은 참 글을 잘 썼다. 먹고 사는 일이 바빠 요즘은 통 안 쓰고 있는 눈치지만, 그래도 잡았다하면 절절히 가심에 아름다운 자욱을 남기는 글을 쓴다. 가끔 그런걸 놓고 사는게 안타깝지만, 위로 부모님과 제식구 다섯을 건사하려면 그런거저런거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는 일임을..
봄볕이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완연하게 늘어졌으나, 식전에 빨래 널러 뒤안에 돌아갔더니 아직은 벗은 감나무 가지 아래로 부는 바람이 차갑다. 거기다 마음조차 근래는 도무지 바늘틈이 아니 꽂힐 정도로 첨예하게 곤두서서 매여 있는 한가지 일을 생각함에 서릅게 울다가 그치다가를 자주한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이리저리 연줄 걸리듯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띄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아닐건데...하고 도리질치는 일에 있어서는 그 다양한 방향의 갈피가 도무지 인정이 안되니.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지 않는가.
오늘은 영랑의 시집을 봐야겠다.
전상순
위로 누나가 있고, 아래로 땡삐같은 남동생이 있어
그야말로 그 아인 장남이라도 낀 세대로 자랐다
제 동생이 워낙 때구쟁이라 그 아이 치닥거리에
친정올케는 그 아이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어릴 때 달래기 쉽다고 노상 비디오를 틀어 주었다
말이 늦어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어휘력은 많이 늘었다
그러나 티비 보는 습관은 고치질 못햇다
친정에 가면 요즘 아무집이라도 그러하듯 거실에도 티비
할아버지 방에도 티비, 제식구들 방에도 티비...종일
집구석에 티비 세 대가 왕왕 소릴 질러가며 하루종일
소리와 광고를 토해 내었다
아이의 언어는 생활 언어에서 동떨어진 만화영화의
대사를 닮아 가고, 머리 속에서도 생활가운데 일어난 일들이
자연스럽게 만화영화로 연결이 되어 사고의 중심이 만화영화
분위기로 돌아가 버렸다. 후회에도 늦었고, 고치기에도 늦었다
조금이라도 티비 소리가 듣기지 않으면 기어이 티비를 틀어 놓아야하고
자기 안으로 숨어버리는 시간이 많았다. 무단히 대문을 나가 아이가 없어
찾아 보면 트럭 뒤에 앉아서 울고 있다. 왜 우냐고 물으면 슬퍼서 운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오면 그럴 수 없이 좋아하는데, 시어머님이 아이에게
너희 집이 좋으냐 고모집이 좋으냐 하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고모집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집에서는 동생이 잘못해도 날 야단친다고
그래서 엄마도 싫다고 한다. 그랬다가 눈치가 있어 아니 엄마도좋아 한다.
초등학교 일학년에 넣어 놓고는 여간 걱정이 아니다.
집에 올 때는 실내화를 갈아 신고 와야 하는데 그걸 그냥 신고 집에 오질 않나
가끔 뜬금없이 혼자 자기 이야기를 해서 선생님이 의아해 하고
제 에미가 걱정이 되서 선생님께 성장 이야기와 집에서의 습관을 이야기 하고서야
선생님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어느날은 수업시간에,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다고는 일어나서
자기집에 옛날에 불이 났다고(전혀 뜬금없는 말이다. 불 난 적도 없다)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하더란다. 선생님이 에미의 귀뜸이 없었다면 얼마나 황당해했겠는가.
그런 저런 이야기를 공사일 때문에 제주도 가 있는 제 애비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내동생 즉, 아이 아빠가 밤새도록 생각을 얼마나 하였는지 선생님한테 손수 편지를
써서 보냈단다. 무슨 사연이 그렇게 길고 길었던지 두 장이나 써서 보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선생님이 올케에게 하면서 아이 아버지가 참 자상하신가봐요 하더란다.
첫딸은 똑똑하고 제 앞가림을 하여 조금의 걱정도 없이 학교에 보내다가, 둘째놈이 그렇게 엉뚱한 행동을 한다니 조금은 놀랬으리라. 평소의 성격과 행동은 생활 속에서 늘 보아오던 것이라 그려려니 하고 넘어 갔을터인데, 학교에서 돌출되는 아들놈 행동에 애비는 밤새도록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연필을 들어 편지를 구구절절 써 내려갔겠지. 애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한 집안의 정서를 살펴보자면, 그 집 식구들이 쓴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남동생 셋과 나, 이렇게 삼남 일녀의 환경에서 자랐다. 내가 장녀이니 동생들을 은연중에 부모처럼 생각하게 된다.
이젠 모두 분가하여 제 여우살이를 꾸려나가지만, 예전에 우린 편지를 잘 썼다
하나 둘씩 시차를 두고 떠난 군대생활에 집 소식을 보내주느라 편지를 썼고, 내가 시집 오고 난 뒤에는 동생들이 간간히 편지를 써서 내게 보내 주었다
큰 동생 군대 갔을 때는 내가 하루걸러 한 번쯤 편지를 썼을 거다. 지금도 가지고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낸 편지가 두툼하게 한 묶음은 족히 되었으리라.
그렇게 저렇게 오간 형제들의 편지를 읽어보노라면, 한 솥밥을 먹고 한 어미 밑에 품어져 자란 병아리같은 자슥들은 어찌이리 생각이나 필체나 문장들이 닮았는고...저절로 감탄이 내질러지게 흐르는 정서가 같다.
문장이 흐르며 내쉬어야 할 쉼표의 마디까지 부지불식 호흡이 같아 읽어도 읽어도 숨이 차지않고 자연스럽다.
선생님께 두 장의 편지를 쓴 남동생은 참 글을 잘 썼다. 먹고 사는 일이 바빠 요즘은 통 안 쓰고 있는 눈치지만, 그래도 잡았다하면 절절히 가심에 아름다운 자욱을 남기는 글을 쓴다. 가끔 그런걸 놓고 사는게 안타깝지만, 위로 부모님과 제식구 다섯을 건사하려면 그런거저런거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는 일임을..
봄볕이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완연하게 늘어졌으나, 식전에 빨래 널러 뒤안에 돌아갔더니 아직은 벗은 감나무 가지 아래로 부는 바람이 차갑다. 거기다 마음조차 근래는 도무지 바늘틈이 아니 꽂힐 정도로 첨예하게 곤두서서 매여 있는 한가지 일을 생각함에 서릅게 울다가 그치다가를 자주한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이리저리 연줄 걸리듯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띄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아닐건데...하고 도리질치는 일에 있어서는 그 다양한 방향의 갈피가 도무지 인정이 안되니.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지 않는가.
오늘은 영랑의 시집을 봐야겠다.
전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