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에 쌀 한 가마니 부어 놓으면
요즘은 쌀을 뒤주에 부어 놓고 먹는 사람이 드물거라. 옛날에는 요즘처럼 쌀이 소포장으로나오는 것이 아니였다. 쌀 집에 가면 짚 멍석으로 만든 커다란 당새기에 쌀이며 보리쌀, 잡곡을 가득 부어 놓고, 그걸 됫박이나 말로 되서 팔았다. 그걸 형편에 맞게 사다 먹었는데, 지금처럼 밥을 많이 먹지 않아서 쌀을 많이 못 사다 놓는 것이 아니고 대개 돈이 없어서 한 가마니의 쌀을 사다 놓을 수 없는 형편이였다.
내 나이 다섯살에 대구 범어동으로 이사를 왔다. 다섯살때 둘째 동생이 태어 났다
부엌 뒷편은 담도 없는 탱자나무 울타리였고, 탱자울 뒷편으로는 넓은 논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들판의 규모야 지금으로 보면 그닥 넓은 것은 아니겠지만 다섯살 계집애의 눈에는 까마귀가 한 겨울 들판을 퍼질고 날던 그곳은 한정없이 넓고 광활하며 아장아장 내 발걸음으로는 혼자서 가 닿지 못할 땅이였다
탱자울 사이로 겨울 바람은 사정없이 부엌으로 몰아쳤고, 동생을 낳은 엄마는 산후조리도 없이 그 바람을 맞으면서 식구들의 끼니를 끓여 대었다. 그 집은 길 가를 따라 길죽하게 지어진 집인데 마당은 없고 방 하나에 탱자울 부엌이 하나씩 딸린 형태의 집이였다.
그 나이에 나는 엄청 억세게 컷던 모양이다. 주인집 딸래미 꼭지랑 맨날 머끄댕이를 쥐어 뜯으며 하루에 열천번도 더 씩씩거리며 싸왔고, 지금 얼굴 흉터의 대부분이 꼭지의 매시랍은 손톱끝에 생겨난 것이라면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피 튀기는 상황이였을까 짐작을 하고도 남았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길다란 마당 끝에는 강희네가 살았다. 강희는 마찬가지 내 또래의 머슴애였는데 얼굴빛이 몹시 희였다. 강희의 엄마는 잘 기억이 없고 강희는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강희네가 이사를 가면서 뒤주를 팔았다. 뒤주색깔이 약간 붉은 기운을 띄고 있다. 딱 쌀 한가미 들어가면 뚜껑가까이 쌀이 수복이 차 올랐다. 엄마는 그 뒤주를 오백원에 샀다.
육십년대 돈 가치가 지금과는 턱없이 차이가 난다지만 오백원에 쌀 한가마니 거뜬이 품을 수
있는 뒤주를 살 수있슴을 놀랄만한 일이다.
허기사 새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오백원짜리 쌀 뒤주를 사 놓고 마냥 행복했었다.
그 때는 우리집 형편이 좋았나보다. 친정어머니는 지금도 얘기하신다. 아이 넷 낳고 고만 고만 살 동안 그 때부터 형편이 펴져서 쌀을 한 가마니씩 사다 놓고 살 수 가 있었다
지금도 엄마는 가끔 이야기 한다. 둘째 아들놈이 먹을 복이 많은가벼.
얼마나 뿌듯하였을까. 뒤주에 가마니의 쌀을 부어 놓고 티검불을 주워내며 수북히 올라 온 쌀의 높이를 평평하게 쓸어 내렸을 거칠은 손. 그러나 마음만은 하냥 행복 했으리라.
그 후로 사정은 좋았다 나빳다 했겠지. 아버지가 노름에 정신이 없을 땐 봉지쌀을 사다 먹으며
그 붉은 뒤주에는 거미줄이 쳐졌다. 국수와 수제비로 끼니를 떼우고 쌀이 없을 때는 뒤주에 바닥을 훑어서 쓰레받기로 쌀을 샅샅이 퍼냈으니 그러면서 하는 말. 뒤주 바닥이 넓어서 한끼 밥은 할 수가 있겠구나. 그후로도 셀 수 없을 만큼 이사를 다녔지만, 엄마는 식구수와 세월에 따라 불어나는 세간 살림과 함께 그 뒤주를 꼭꼭 이삿짐 리어카에 싣고 다녔다.
작년 여름
친정에 갔더니 올케가 쌀 뒤주를 사야한다고 한다. 엄마에게 옛날 그 붉은 소나무 뒤주는 어떡하고 뒤주를 사냐고 했더니, 올케가 시집 올 때 전자렌지 올리는 가구 아래 자동쌀통이 있어 옛날 뒤주는 창고에 넣어 두었다가 창고가 복잡해서 버렸다고 한다.
자동쌀통이야 몇년 쓰니 고장이 나서 또 바깥으로 내치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다시금 쌀통은 필요하게 되었고.
가구점을 돌아 다녀도 옛날 맛이 나는 뒤주는 없다.
소박한 몇줄의 돋을 새김으로 간단한 장식이 들어가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붉은 칠이 여간
정스럽지 않았는데.
나도 여직 뒤주 하나 없이 살림을 산다.
자동쌀통을 나도 구입했다가 고만 고장이 나서 쌀이 줄줄 새는 바람에 버렸고, 그 다음에는
그냥 부엌 구석에 자루째 놓아두고 밥을 해 먹는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이쁜 쌀 뒤주 하나 마련하고 싶은 욕심이 꿀떡같다.
쌀 한 가득 부어 놓고 손바닥에 하얀 분칠을 묻히며 투명하고 둥글고 차라락차라락 낱낱이
제 몸을 굴리는 소리가 듣기 좋은 쌀을 쓸어 보고 싶다.
그 마음 한 켠에 분첩처럼 곱게 일어나는 작은 행복도 같이 맛보면서.
상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