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베갯잇 세월
황금횃대
2004. 4. 12. 17:29
나는 결혼할 때 이부자리 혼수 물목으로 두꺼운 무명 솜이불 한 채와 방석 다섯개, 그리고 시부모님 요자리(이불은 많다고 절대 해 오지 말라해서) 그리고 청, 홍방석 두개, 누비원앙베개 한 세트, 일반 레이스 베개 세 개가 다다.
이 물품들은 돌아가신 친정고모가 나를 직접 데리고 가서 손수 골라 주신 것으로
레이스베개는 이미 그 수명을 다해서 불에 처대고 말았지만, 누비 베개만은 아직도
쓰고 있다.
흰색 인조 누비베개는 영점오밀리 간격으로 촘촘히 누벼놓은 꼼꼼함도 일품이지만
세탁기 마구 돌리고 흰색이라 쉽게 때타는 것을 감안하여 그렇게 세탁을 했는데도
모양이 아직도 일그러지지 않고 유지가 되는 걸 보면, 울 고모의 물건고르는 눈썰미가 보통이 넘었음을 반증하는 결과이다.
목딱그튼 서방이 가끔씩 큰 소리를 지르거나 내게 서운한 구석을 내 보이면 혼자
방구석에 요대기깔고 또아리틀어 옹실 드러누워 있을 때가 있는데 그 때 누비베개를 내려놓고 나란히 놓은 다른 하나의 베개를 가만히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세월이라고 이름 짓자면 십수년의 시간도 세월의 축에 들 수 있겠지. 베개잇을 들여다 보니 날실은 다 어데로 가고 없고 씨실만이 남아 촘촘히 누벼진 누비 박음실 속에 바늘 한 땀만큼 얽혀져 있다. 저 누비박음실이 없었다면 하얀 인견의 자취도 그 세월 속에 와해의 길을 걸었으리라. 그러나 목면의 바느질 실이 튼실하게 지탱하는 한 인견 본연의 반짝이는 때깔은 퇴색되더라도 구성하는 요소는 바람에 날리지 않고 베갯잇의 면모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베개 속통을 감싸고 있는 연두색과 붉은색의 모서리에는 어설픈 원앙 미싱 수(繡)가 놓여 있다. 흰색과 푸른색의 서너줄 물무늬가 수놓여 있어, 원앙 한 쌍이 푸른 수초 옆에서 놀고 있다는 걸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고개를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던 그들이 다정히 맞닿아 있는 얼굴과 깃털의 한적한 고요 아래에는 부지런히 헤엄치는 발바닥이 있을거구 사는 일이란게 이와 같은 이치로 살아야 함은 묵시적으로 보여준다.
서방은 초저녁에 내게 고함지른 일을 깡그리 잊고 혼자서 티비를 보며 희희낙낙이다.
나는 초저녁의 삐짐을 밤늦게까지 끌어 안고서는 혼자 베개잇을 바라보며 도를 닦고 있다.
혼자 덩그마니 누웠으니 잠도 오지 않는다. 천정을 쳐다보다 떠나간 님을 생각한다,
기와집을 서너 채 지었다 무너트렸다...슬그머니 낡은 베개를 끌어 안는다.
순간 코 밑으로 스름스름 들어오는 내음.
그것도 더도 덜도 아닌 고서방의 내음이다.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하랴. 새 솜처럼 튀어오르는 탄력은 없어도 안으면 저항없이
꿀꺽 내 안으로 들어와 편안한.
상순
이 물품들은 돌아가신 친정고모가 나를 직접 데리고 가서 손수 골라 주신 것으로
레이스베개는 이미 그 수명을 다해서 불에 처대고 말았지만, 누비 베개만은 아직도
쓰고 있다.
흰색 인조 누비베개는 영점오밀리 간격으로 촘촘히 누벼놓은 꼼꼼함도 일품이지만
세탁기 마구 돌리고 흰색이라 쉽게 때타는 것을 감안하여 그렇게 세탁을 했는데도
모양이 아직도 일그러지지 않고 유지가 되는 걸 보면, 울 고모의 물건고르는 눈썰미가 보통이 넘었음을 반증하는 결과이다.
목딱그튼 서방이 가끔씩 큰 소리를 지르거나 내게 서운한 구석을 내 보이면 혼자
방구석에 요대기깔고 또아리틀어 옹실 드러누워 있을 때가 있는데 그 때 누비베개를 내려놓고 나란히 놓은 다른 하나의 베개를 가만히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세월이라고 이름 짓자면 십수년의 시간도 세월의 축에 들 수 있겠지. 베개잇을 들여다 보니 날실은 다 어데로 가고 없고 씨실만이 남아 촘촘히 누벼진 누비 박음실 속에 바늘 한 땀만큼 얽혀져 있다. 저 누비박음실이 없었다면 하얀 인견의 자취도 그 세월 속에 와해의 길을 걸었으리라. 그러나 목면의 바느질 실이 튼실하게 지탱하는 한 인견 본연의 반짝이는 때깔은 퇴색되더라도 구성하는 요소는 바람에 날리지 않고 베갯잇의 면모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베개 속통을 감싸고 있는 연두색과 붉은색의 모서리에는 어설픈 원앙 미싱 수(繡)가 놓여 있다. 흰색과 푸른색의 서너줄 물무늬가 수놓여 있어, 원앙 한 쌍이 푸른 수초 옆에서 놀고 있다는 걸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고개를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던 그들이 다정히 맞닿아 있는 얼굴과 깃털의 한적한 고요 아래에는 부지런히 헤엄치는 발바닥이 있을거구 사는 일이란게 이와 같은 이치로 살아야 함은 묵시적으로 보여준다.
서방은 초저녁에 내게 고함지른 일을 깡그리 잊고 혼자서 티비를 보며 희희낙낙이다.
나는 초저녁의 삐짐을 밤늦게까지 끌어 안고서는 혼자 베개잇을 바라보며 도를 닦고 있다.
혼자 덩그마니 누웠으니 잠도 오지 않는다. 천정을 쳐다보다 떠나간 님을 생각한다,
기와집을 서너 채 지었다 무너트렸다...슬그머니 낡은 베개를 끌어 안는다.
순간 코 밑으로 스름스름 들어오는 내음.
그것도 더도 덜도 아닌 고서방의 내음이다.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하랴. 새 솜처럼 튀어오르는 탄력은 없어도 안으면 저항없이
꿀꺽 내 안으로 들어와 편안한.
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