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요런건 욕심나지..

황금횃대 2004. 4. 12. 17:31
1.메주틀



생일이라고 친구가 퇴근 후 집에 들러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제집으로 가다
바래주러 나온김에 회관에 불이 켜져 있어 들여다 보다
촌아지매들 다섯이 저녁잠을 물리치고 민화투판을 벌려 십원짜리 동전을
가지런히 놓고는 선에게 좋은 패를 주지 않는다고 지청구다
구석쪽에는 텔레비전이 놓여있고, 따금씩 이장이 틀어 놓는 앰프에
이자연의 노래가 공급되는 장치가 텔레비전 아래 놓여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5:5 가르마에다 중간부분에는 밀가루를 들어부은 듯
이순재씨가 희안한 헤어스타일을 얹어 언뜻 보이고, 그의 아내 되는 역활을
맡은 김용임씨가 화장발 짙은 가면 얼굴로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 넣은 듯
활개친 한복을 입고 있으며, 맞은 편에는 선우은숙이 드디어 얼굴에
드릴과 샌드페퍼와 입술 디비기 기술을 구사한 얼굴로 꽃분홍 한복을
입고 있다. 은숙의 옆에는 구케의원짓 하다가 여의찮은지 '돌아온 탈랜트'
정한용이 뽀마드 기름으로 검은색 염색이 역력한 머리카락을 2:8 가르마로
한 올 흐트러짐이 없이 붙여서 나왔다

조금 앉아 있으니 수미아부지가 비틀비틀 갈짓자 걸음으로 왔을 혀를 비틀며
회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하루종일 고속도로 갓길을 청소하고 돌아온 검은 손
에는 일복이 들은 붉은 륙색과 곱게 만든 작은 나무 틀을 품고 있는데
륙색은 문 앞에다 집어 던지고 나무틀은 곱게 모셔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한눈에도 그건 메주틀이다.
우물정자 모양으로 가로를 길게 내어 자연스럽게 메주틀 손잡이를 만든
숙달된 솜씨임에 틀림이 없는 그 물건

서방놈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맨날 차 운전해서 처자슥 먹여살리다 봉께로
집구석에 메주틀이 있는지 칡다리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가을걷이를 하고 마른 콩을 불려 동짓달 메주를 쓸라치면 맨날 발싸심을하여
넘의 집으로 메주틀을 얻으로 다니는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 얻으러 다니는 것도 넘에게 아순 소릴 야옹야옹 내질러야하는 판국이니
느느니 꾀라고, 이젠 메주틀 없이 플라스틱 오그당한 모양이 있으면 거기다
보재기를 깔고 메주를 밟아 예닐곱장 만들어 내지만, 누추한 집안 꼴을 그대로
내 보이는 것 같아 여간 옹색스럽지 않다.

수미아부지는 하루 일이 죙일 매연 마시는 일에 찬바람까지 가슴팍에
종일 들어마시니, 저녁에 반주로 속을 아니 데울 수 없는 노릇이라 그것이
데우는 것으로 말면 되는데 술이란게 어디 그렇게 녹록한 것이냐 말일시.
처음 시집와서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보고는 내가 또랑물로 떨어질까바 아연실색
을 하였는데, 십오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또랑물에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나의 놀람은 아무 소용없는 몸짓이고 말았다.
신고산이 우르르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
노랫가락이 철로를 따라 느린 걸음으로 굴러오면 그 아저씨가 오는 것이다.
비록 삼백예순날을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 오건만 그래도 마누래가 아침에 부탁한 것을 잊지 않고 역전 뒤에 사는 손재주 좋은 보람이에비한테 부탁하여 그걸 찾아 가심패기에 여물게 챙겨오는 모습이 여간 정겹고 보기 좋은 것이다. 울 서방눔은 뭐하는기야

발냄새가 난다고 화투치던 아지매가 "퍼뜩 집에 가서 발이나 씻고와요 옵빠"
하고 한마디 하니 또 다시 비틀거리는 뭉기적으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얼래? 나가고 보니 메주틀은 회관 방바닥에 그냥 두었다.
츨츨....집까지 가는 걸음이래야 이십여미터 밖에 안되지만, 뒤따라 나가 안겨
주는 사람이 없다. 냅둬여..내일 수미엄마 회관오면 찾아가믄 되지를.

햐..저 반들반들 정사각형의 짚이도 딱 맞는 저 물건, 메주틀!

텔레비전에서는 약혼이 나가리가 됐다고 덕지덕지 분장을 하고 드레스를 걸친
위인들이 악을 바락바락 쓰며 울고 있다


저 인간들보다 메주틀이 훨 메꾸름하니 이뻐 보이고, 저들이 지닌 화려함보다
수수한 나무때기가 내는 은은한 목질의 빛이......

욕심 아니 낼수가 없고나.






2.장작

태백산 어디 산골마을, 너와집 추녀밑에 한치 낮게 덧달아낸 함석 지붕 밑,
정면으로 쏟아지는 남향 빛을 살짝 비켜 환한 그 아래
동글동글 장작이 한 쪽 흙벽이 보이지 않게 빼곡히 쟁여져있다
저거저거저거저거저거.....저것보고 욕심나지 않으면 촌사람 아니재러.

정월 초 하룻날 제사 쓸라고 두부나 한 판 맹글어 볼라치면
세상에 이백년이나 묵은 집구석에 땔나무가 하나도 없다.
각데기를 때니 과일 박스를 찢어 때니...그래도 불땀이 없어 가마솥에
반이나 넘게 잡은 물이 끓을 생각을 않는다
모퉁이를 돌아서 삽자루 부러진거 주워오고, 지난 가을 대추 하나 달지 못해
구질구질하던 대추나무 베어낸거 잔가지 쳐오고, 칠팔년전에 쓰던 나무로 맹근
자두 상자 망치로 댓개 뽀개서 떼니 그제야 솥뚜껑 밖으로 설설 김이 피어
오른다. 참 누추하고 허접한 살림이여
집구석 안에서 때꺼리 해결하는 일이야 톡, 톡 가스때서 하믄 되지만,
바깥에서 솥단지 거는 일은 말짱 장작이나 땔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상거지꼴이다.

집구석에 쳐백힌것들 모조리 거둬다 때고 나면 겨우 두부 한 판 만들어 먹으니
저 양지바른 곳에 가을 내도록 말라 단단하고 여물게 제 화력을 키워온
마른 장작이야 말로 얼마나 욕심나는 물건인가

올해는 조리장사 땡빚을 내서라도 잘드는 톱과 자그마한 손도끼를 하나씩 사서
노란 외발구르마 끌고 산에 나무나 허러 댕길까보다


저 욕심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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