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 동맹 여편네

사연많은 김장

황금횃대 2004. 4. 12. 18:12
뭐 우리집그튼 촌구석은 가을배추 씨 뿌려서 밤낮으로 들여다보고 키와 김장을 한다
배추씨는 뿌려놓으면 지절로 싹 나고, 키 크고, 알 품는줄 아나 절대로 아니다.
씨 뿌려놓고 노란 떡잎 두장 나란히 나오면, 얼릉 디디티를 뿌려야한다.
이땅에 씨가리(서캐)와 이를 단박에 몰아낸 디디티.
그걸 마악 돋아나는 배추 떡잎에게 찹쌀모찌 밀가루 묻히듯 뽀얗게 뿌려놔야
벌레 들이 달라들어 마악 올라온 그놈들 모간지를 끊어놓지 않는다.
조금 커서 속잎이 나오면 그지 없이 반갑지를
세상에 이쁘다이쁘다 애기들도 이쁘지만, 씨 뿌려 놓고 기댈려 싹나는거 보는것처럼
또 이쁜게 있을라구.

배추씨는 무씨보다 비싸서 한 자리에 서너개 넣은데, 그게 싹이 잘 나면 서너개 씨가 다 싹을 틔우고, 디럽게 안되는 해는 몇번을 넣어도 배추씨가 잘 안난다.
무슨 억하심정인가 싶어 땅을 파디비봐도 원인은 알 수없고, 농사꾼 애간장만 태우게 한다. 그게 배추씨다.

한번, 혹은 두번, 혹은 세번까지 솎아주며 배추를 키운다.
찬바람 일면 배추도 제 속을 차리는게지. 가만히가만히 알을 품는다
찬바람에도 쉬이 얼굴을 내밀지 않고 이슬에도 쉽게 몸을 내어주지 않는다
혼자서 가만가만 품는다.

며칠전, 비 오면 떠르르 춥다는 소식도 있고해서 밭에 가서 배추를 뽑아왔다
농사지은 놈들은 그것이 못생겼던 알차던, 벌가리로 가쟁이가 벌었던 무조건 다 뽑아온다. 이것이 농사꾼의 마음이다.
겉잎을 다듬어 모아둔다. 우리집 황소가 아주 좋아하는 간식거리다.
태초부터 풀을 먹어온 황소는 배추 먹는 소리가 환상이다
사그락아사삭자그락자그락 씹어먹는 소리가 옆에 선 사람도 구시에 던져 준 배춧잎 도로 거둬서 먹고 싶은 심정이다. 그 소릴 듣고 우리집 따라쟁이 고서방은 배추를 몇 단을 먹었는지 모른다. 생으로. 그러다 요즘 설사로 고생하고 있다
정로환을 열심히 복용한다는 소문이다.

황소 간식거리도 장만하고 우리는 김장을 한다.
푸른잎이 좋은데 우리집 식구들은 잘 안 먹어서 홀딱 까서 하얀부분을 먹는다
허기사 배추가 푸른잎이 많으면 양념을 많이 먹고, 흰부분이 많으면 양념이 덜 먹힌다. 그런걸 보아 검은 얼굴에는 화장품이 더 많이 들거라는 생각. 흐...

오늘 김장을 했다.
작은집 동서네 김장을 매년 같이 하다가 올해는 같이 안 한다고 내가 어깃장을 놓아
기어이 우리집만 했다.
내가 김장을 단독으로 하겟다는 말에 고서방은 얼굴이 카멜레온처럼 붉으락푸르락한다. 왜 여태까지 모양새 좋게 같이 해 놓고 안 한다고 하느냐며 좀 힘들더라도 참고 하면 좋잖아 한다.
나는 실타 했다. 왜 싫냐는 말에 나는 그 동안 구겨 놓은 서운한 감정을 비단필 펼치듯 좌르륵 펼쳐 이야기를 했다. 고서방이 더욱 인상이 디러워졌다. 카거나말거나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나도 한 고집 한다는걸 이번에 보여주기로 했다.
낸들 왜 같이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마이 있으니 이것이 날 가마이때기로 보나 참고 참고 존기 좋다고 넘어갔더니 날 등신으로 보는거지..나는 더욱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고서방에게 대항했다.
나이먹으며 서방은 종이 호랑이가 되고 여편네는 갈기세운 사자새끼가 된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나의 서슬에 고서방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만다. 어흑..내가 이겼다 야호!

다듬고, 절이고 씻고 물빼고 양념 준비하고 속백이 준비하고...치자면 김장이라는 김치 하나 담는 일인데 뭔 준비거리가 그리 많은지. 혼자 동당걸음을 치며 하는데 고서방 낮에 점심 먹으러 들어와서 배추도 들어다 주고 김장봉투도 사다주고 목마르다니 콜라도 사다주고, 김치통도 씻어다 갖다주고...흐흥...잘 한다.

김치통도 꽤 무거운데 냉장고에 다 넣어주고...어이구 이뻐라

이즈음. 김장 때문에 티격태격 하긴 했지만, 고서방은 참말로 조근조근 이야기를 잘 한다. 특히 형제간의 일에 대해 내가 조금 주뎅이가 튀어나오면 더욱 신경을 써서 이런 저런 설명을하며 어쨌거나 이쁜 니가 좀 참아라 하고 이야기를 해준다.
그럼...마구 윽박지르는 것보다, 이쁘지만 머리는 디게 나쁜 내가 이해하기 좋다.
참..그것도 오랫동안 싸와서 그렇게 변한 것이재.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무조건 자기가 옳으니 따라와! 하는 식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변한다. 이런 시절이 오다니
다 내가 참고 기다린 복이다. 으흐...

김장을 다 해놓으니 어머님 콩을 담구신다. 내일은 메주 쑤자고 하신다. 도무지 쉴 틈을 안 주시는구만.

김치를 버무리면서 고서방 쭈와하는 돼지고기 푸윽 삶아 놨더니, 고서방 밥도 자기가 퍼고 김치 가져가서 맛있게 쌈싸먹는다.
이렇게 오래오래 같이 살라믄 서로 변해야 한다. 앞으로 고서방은 더욱 내가 좋아 하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감사하면서 다른 남자가 아무리 멋있어도 곁눈도 주지 않을 것이다. 아휴..닭살이여



12월에 김장김치 잘 익으면 퍼내서 산골짜기 눈 내리는 동네에서 벙개나 치면
돼지고기 안주하여 곡주 한 잔하러 친구들이 올려나?



근데 몇포기쯤 했냐고요? 팔십포기..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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