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세월의 강도 흘러

황금횃대 2004. 4. 12. 19:13
문환아
아무리 봐도 니는 니 애비 참 많이 닮았다
지금이야 두리뭉실 배 나오고 얼굴이 타서 나이만큼 얼굴을 보지만
니 애비가 총각 때는 한 인물 했니라
고모 바로 밑에 동생이라서
이날 이때까지 살아온 정서가 똑 같아
가끔 니 애비가 쓴 편지를 읽어보면
어쩜그리 이 고모와 말투가 비슷한지
허기사 국민학교 댕길 때 소풍을 갈라치면
할아버지가 사탕 한 봉지를 고모하고 니 애비하고 똑같이 나눠서
소풍가방에 넣어 주셨지
그렇게 스물몇해를 한 솥밥 나눠먹고 살았으니
어찌 생각이 다르겠느냐

한번은 말야
내가 니 애비 가입해 있는 카페에 글을 쓴 적이 있어
그 글 밑에 니 애비가 답글을 달아놨는데
그걸 읽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거야
사람이 사람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평생의 부대낌으로 기억되는게 아닌거 같어
어느 한 순간
자신의 가슴에 사리처럼 박혀 버리는 어느 한 순간의 풍경이
평생 그 사람을 바라보는 프리즘이 되는거지

문환아
지금 니 나이보다 한 살 어렸을적에 니 애비는 작은 할아버지와 추석 고향 다녀오는 길에 차 사고를 당했지
옛날 버스는 운전석 옆에 차 엔진이 들어 있는 뚜껑이 있었는데
차가 논바닥에 구르면서 엔진 식히는 물이 니 애비 몸을 덮쳤단다
목 밑으로 팔뚝으로 배 전반에 화상을 입고
붉은 살갗으로 단칸방에 누워 백열전등으로 화상부위를 말리던 기억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때 마악 국민학교 일학년이였지
화상자국이 선연하게 몸을 덮고
옷을 갈아 입을 때면 아픔은 꽃처럼 피어났단다
그 때 우리는 하나뿐인 할아버지의 누나, 즉 고모의 고모집에 갔었단다
우물 앞 작은 실개천에서 돼지감자를 긁어서 삶아 먹고
이른 아침이면 도라지꽃의 얼굴을 터뜨려 팡팡 웃음을 만들어 주었지
니 애비의 푸른 슬리퍼에는 젖은 흙이 달라붙어
신발보다 더 뚱뚱해진 흙덩이를 매달고 밭기슭을 달렸단다
저녁이면 모깃불을 피워놓고 골을 가르고
초석자리 꽃자리 갖가지 왕골자리 짜던 고모옆에서
호롱불 꺼지게 바람 일으키며 장난을 쳐댔지

그런 동생 자식인 니가 나를 이제 고모라 부르며
니 애비가 쌍책면 사양리 고모집에 놀러가듯
방학이라고 나를 따라 나섰구나

문환아.
요리 하면 부르세요 하면서 부엌을 서성이는 니가
몇십년의 세월을 단박에 뒤집는구나
오원에 오이 하나를 사와서
된장을 찍어 먹으며 니 애비는 컷단다.




에고...목이 메여 못쓰겠다


이눔우 자슥아
건강하게 잘 자라라
그라고 글자는 엥간하믄 오른손으로 쓰고.
애가 셋이라 니 에미는 그것도 고쳐줄 여유가 안되는갑다
열 한밤 자고 간다고 했으니, 그 동안 고모랑 열심히 오른손 힘을 길러
내년에 학교 가걸랑 이쁘게 글자를 쓰자구나





*자는 모습이 이쁘다. 하루종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티도 흠도 없는 웃음을 삐라처럼 경쾌하게 날리는 놈이.





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