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슬슬 부딪혀 오는 것
황금횃대
2004. 4. 19. 22:14
며칠 전 아침을 준비하는데 고서방의 전화기가 울린다
고서방 친구 조모씨의 전화다.
지금 바로 대구 경북대 병원으로 갈 수 있냐는 것이다
식전이지만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운전밥 먹는 사람의 불문율이다.
옷을 입고 나갔던 고서방이 내게 전화를 했다
아침 준비 끝났으면 자기와 같이 병원으로 좀 가야겠다고
허기사 대구 지리라면 내가 빠삭하게 쥐고 있지 않는가
내심, 병원에 환자 내려놓고 고서방하고 같이 대구 친정에 들렀다 아부지도 뵙고
엄마도 보고 와야지 이렇게 마음 먹었었다.
시부모님, 아이들 상만 식탁위에 차려놓고 나는 대충 걸치고 뛰어 나갔는데
환자를 태워오는 풍경이 장난이 아니다.
칠십이 족히 넘은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 친구가 사는 동네의 총각 부모로서
그 총각이 허구헌날 애를 먹여 하루라도 맘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렇게 병이 들어서
병원을 가고자 해도 마땅히 따라 가줄 자식이 없는 것이다.
환자를 기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작은 오두막에서 업고 나와 뒷자석에 영감님하고 나란히 앉혔는데,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앉아선 갈 수가 없어 할머니는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비스듬히 누웠다.
내가 앞좌석에 타고 대구 경대병원을 찾아간다.
길을 모르는 남편은 나의 지시대로 아침 출근하는 밀리는 도시의 길을 헤쳐나간다.
병원에 가서 남편의 면허증을 맡기고 휠체어를 가져와 할머니를 앉히는 것부터
잔료과를 찾아가 접수를 하고 의사에 지시에 따라 채혈을 하며 화장실 수발까지 꼼짝없이 내가 들게 되었다.
영감님은 가방하나 들고 안절부절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 종합병원 복도를 왔다갔다하며 수족도 쓸 수없는 할머니 옆에서 서성거린다.
채혈 검사가 나와야 약을 줄 수 있다는 말에 병원 복도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세상에 아픈사람은 왜그리 넘쳐나는지 병원 층층이 사람들이 쉴 새없이 왔다갔다, 전국에 종합병원이 얼마나 많은데 그 병원마다 모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렇게 앉았는데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좀 데리고 가 달란다.
화장실에가니 넘쳐나는 쓰레기에 경대병원이 오래된 건물이여서 좁기가 이루 말 할수가 없었다. 휠체어를 겨우 운전하여 할머니를 변기통에 안아서 앉히고 옷을 내려주고
오줌소태가 걸려서 소변이 막 나올 것 같아도 금방 안 나온다며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기에 한참을 화장실 안에서 기다리니 할머니가 소리를 한다.
다시 옷을 올려 드릴려고 보니 변기에 물을 뺄려니 피가 변기통에 많이 나왔다.
그냥 옷을 올리면 내의를 다 버릴텐데..이런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차마 휴지로 밑을 닦아 드리지 못했다. 나도 어머님이 아파서 몇번을 병원에 가긴 했지만, 이렇게 대소변 뒷수발은 한번도 하지 않았기에 멈칫하고 만 것이다.
할머니는 오년전에 유방암 수술을 했는데 방사선 치료를 다 받고 했어도 암이 뼈로 전이가 되어 사람은 마를대로 마르고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를 못한단다. 쓰지만 못하면 그나마 다행이게 사지 육신이 쑤시고 아파서 그 통증을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단다. 내외가 아무 소득도 없이 사니 기본 진료비 외에 비싼 약값이라든지 다른 비용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사회보장 제도가 그나마 요정도 되었기에 그들이 병원에 와도 덜 부담이 되리라.
약이래야 내가 봐서 치료약이 아니고 진통제를 계속 먹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병원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를 보자 대뜸하는 말이 다른 치료는 이제 방법도 없고 진통제만 준다고 아예 딱 깨놓고 이야기를 한다.
병에 걸리면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인격적인 대접을 받기 힘들다. 측은지심도 없는 의사에게 얼마나 아프시냐는 그런 말은 아예 들어볼 수도 없고, 그저 한 사람 한 사람 들이 닥치니 사연을 듣고 약처방을 내리고 검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그런 관계에 불과한 것이다.
나이 들어 안 아프게 살면 그것 이상 더 좋은 것이 어디있겠냐마는, 사람의 일이란 그걸 장담 할 수가 없으니 애시당초 비극적인 생의 결말은 어느정도 예약이 된거나 마찬가지다. 자식을 낳아 길러봐야 기동도 할 수없는 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가지도 않고, 병원이 있는 소재지에 자식이 살아도 기껏 전화로 예약정도 밖에 해 줄수 없는 형편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병원에 세시간 정도 앉아 있는데 젊은 사람도 물론 있지만, 늙은이 내외가 병원진료과를 찾아서 삼층이며 오층을 벌써 세번째 오르락내리락 한다며 영감님이 할무이한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지나간다. 크리스찬 디오르가방을 들고 하늘색 펜디 스카프를 우아하게 걸친 있어뵈는 할머니 내외분도 딸랑 두 분이 와서 병원 복도 대기 의자에 앉아 계신다. 진료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핸드폰은 연신 울어대서, 세상살이가 얼마나 바쁘게 얽혀 있고, 끊임없이 간섭을 받아야하는 연결고리에 걸려 있는지 실감을 한다.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발급밭아 병원 근방에 있는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서는 다시 병원으로 와 고서방이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나오는 사이 나는 출구쪽에 휠체어를 믹고 가서 차가 오자 다시 안아서 할머니를 태우고...얇은 이불을 덮어 준다.
고서방은 집에서도 환자 수발을 잘 안해봐도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문 앞에 뻐이 서서 있다. 할머니를 태우려고 등에 손을 갖다대니 날씨가 더워 땀이 나서 끈끈하다.
휠체어를 안내에 가서 반납하고 친정동네는 고사하고 서둘러 황간으로 되돌아 온다
병원에서 친정에 전화를 하니 아버지가 받아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상조(남동생)가 제주도에서 옥돔하고 많이 보내왔는데 내가 병원에 좀 갖다 줄까
-아니 됐어요 아부지 이리로 지금 올라면 시간도 걸리고 또 시내 교통이 장난 아니게 복잡해요
-오토바이 타고 가면 그렇게 밀릴 것도 없고 내 금방간다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마음같아서는 날 내려놓고 고서방 혼자 가라고 하시고 싶겠지만 환자 때문에 안될걸 알고는 자꾸 금방 갈 수 있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옆에서 고서방이 보고는 고개를 살레살레 흔든다. 아부지 오시지말라고.
아침도 굶고 황간도착하여 환자집에 가시 12시가 훨 넘었다
집까지 차가 들어가지 않아서 다시 내가 업고 방 안에 눕혀 드리고 나왔다
나는 왜 이래 힘이 센고야....히.
집에와서 된장에 밥 비벼 먹으니 꿀맛이다.
갈수록 사회는 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다.
출산율을 점점 떨어지고, 우리가 나이가 많은 시대에 이르면 그나마 있던 노인에 대한 가치관도 점점 번지수를 찾을 수가 없어질 터인데, 아...그 시절에 우린 어떻게 살아야하나.
농담으로라도 아들이 엄마랑 같이 살자하면 절대 아이구 귀찮아 너희들이랑 안살래 이런말 하지 말래잖은가. 허기사 어떻게 지금부터 교육을 시켜야 잘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이날 이때까지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니 울 자슥놈은 그걸 보고 배우겠지..하고 위안을 해보는 것이다.
아흐,
건강하게 활기차게 잘 늙어서 늙을 수록 환하게 살아야할텐데....다른기 걱정이 아니고 그게 걱정이다.
상순
고서방 친구 조모씨의 전화다.
지금 바로 대구 경북대 병원으로 갈 수 있냐는 것이다
식전이지만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운전밥 먹는 사람의 불문율이다.
옷을 입고 나갔던 고서방이 내게 전화를 했다
아침 준비 끝났으면 자기와 같이 병원으로 좀 가야겠다고
허기사 대구 지리라면 내가 빠삭하게 쥐고 있지 않는가
내심, 병원에 환자 내려놓고 고서방하고 같이 대구 친정에 들렀다 아부지도 뵙고
엄마도 보고 와야지 이렇게 마음 먹었었다.
시부모님, 아이들 상만 식탁위에 차려놓고 나는 대충 걸치고 뛰어 나갔는데
환자를 태워오는 풍경이 장난이 아니다.
칠십이 족히 넘은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 친구가 사는 동네의 총각 부모로서
그 총각이 허구헌날 애를 먹여 하루라도 맘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렇게 병이 들어서
병원을 가고자 해도 마땅히 따라 가줄 자식이 없는 것이다.
환자를 기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작은 오두막에서 업고 나와 뒷자석에 영감님하고 나란히 앉혔는데,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앉아선 갈 수가 없어 할머니는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비스듬히 누웠다.
내가 앞좌석에 타고 대구 경대병원을 찾아간다.
길을 모르는 남편은 나의 지시대로 아침 출근하는 밀리는 도시의 길을 헤쳐나간다.
병원에 가서 남편의 면허증을 맡기고 휠체어를 가져와 할머니를 앉히는 것부터
잔료과를 찾아가 접수를 하고 의사에 지시에 따라 채혈을 하며 화장실 수발까지 꼼짝없이 내가 들게 되었다.
영감님은 가방하나 들고 안절부절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 종합병원 복도를 왔다갔다하며 수족도 쓸 수없는 할머니 옆에서 서성거린다.
채혈 검사가 나와야 약을 줄 수 있다는 말에 병원 복도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세상에 아픈사람은 왜그리 넘쳐나는지 병원 층층이 사람들이 쉴 새없이 왔다갔다, 전국에 종합병원이 얼마나 많은데 그 병원마다 모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렇게 앉았는데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좀 데리고 가 달란다.
화장실에가니 넘쳐나는 쓰레기에 경대병원이 오래된 건물이여서 좁기가 이루 말 할수가 없었다. 휠체어를 겨우 운전하여 할머니를 변기통에 안아서 앉히고 옷을 내려주고
오줌소태가 걸려서 소변이 막 나올 것 같아도 금방 안 나온다며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기에 한참을 화장실 안에서 기다리니 할머니가 소리를 한다.
다시 옷을 올려 드릴려고 보니 변기에 물을 뺄려니 피가 변기통에 많이 나왔다.
그냥 옷을 올리면 내의를 다 버릴텐데..이런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차마 휴지로 밑을 닦아 드리지 못했다. 나도 어머님이 아파서 몇번을 병원에 가긴 했지만, 이렇게 대소변 뒷수발은 한번도 하지 않았기에 멈칫하고 만 것이다.
할머니는 오년전에 유방암 수술을 했는데 방사선 치료를 다 받고 했어도 암이 뼈로 전이가 되어 사람은 마를대로 마르고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를 못한단다. 쓰지만 못하면 그나마 다행이게 사지 육신이 쑤시고 아파서 그 통증을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단다. 내외가 아무 소득도 없이 사니 기본 진료비 외에 비싼 약값이라든지 다른 비용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사회보장 제도가 그나마 요정도 되었기에 그들이 병원에 와도 덜 부담이 되리라.
약이래야 내가 봐서 치료약이 아니고 진통제를 계속 먹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병원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를 보자 대뜸하는 말이 다른 치료는 이제 방법도 없고 진통제만 준다고 아예 딱 깨놓고 이야기를 한다.
병에 걸리면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인격적인 대접을 받기 힘들다. 측은지심도 없는 의사에게 얼마나 아프시냐는 그런 말은 아예 들어볼 수도 없고, 그저 한 사람 한 사람 들이 닥치니 사연을 듣고 약처방을 내리고 검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그런 관계에 불과한 것이다.
나이 들어 안 아프게 살면 그것 이상 더 좋은 것이 어디있겠냐마는, 사람의 일이란 그걸 장담 할 수가 없으니 애시당초 비극적인 생의 결말은 어느정도 예약이 된거나 마찬가지다. 자식을 낳아 길러봐야 기동도 할 수없는 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가지도 않고, 병원이 있는 소재지에 자식이 살아도 기껏 전화로 예약정도 밖에 해 줄수 없는 형편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병원에 세시간 정도 앉아 있는데 젊은 사람도 물론 있지만, 늙은이 내외가 병원진료과를 찾아서 삼층이며 오층을 벌써 세번째 오르락내리락 한다며 영감님이 할무이한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지나간다. 크리스찬 디오르가방을 들고 하늘색 펜디 스카프를 우아하게 걸친 있어뵈는 할머니 내외분도 딸랑 두 분이 와서 병원 복도 대기 의자에 앉아 계신다. 진료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핸드폰은 연신 울어대서, 세상살이가 얼마나 바쁘게 얽혀 있고, 끊임없이 간섭을 받아야하는 연결고리에 걸려 있는지 실감을 한다.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발급밭아 병원 근방에 있는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서는 다시 병원으로 와 고서방이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나오는 사이 나는 출구쪽에 휠체어를 믹고 가서 차가 오자 다시 안아서 할머니를 태우고...얇은 이불을 덮어 준다.
고서방은 집에서도 환자 수발을 잘 안해봐도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문 앞에 뻐이 서서 있다. 할머니를 태우려고 등에 손을 갖다대니 날씨가 더워 땀이 나서 끈끈하다.
휠체어를 안내에 가서 반납하고 친정동네는 고사하고 서둘러 황간으로 되돌아 온다
병원에서 친정에 전화를 하니 아버지가 받아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상조(남동생)가 제주도에서 옥돔하고 많이 보내왔는데 내가 병원에 좀 갖다 줄까
-아니 됐어요 아부지 이리로 지금 올라면 시간도 걸리고 또 시내 교통이 장난 아니게 복잡해요
-오토바이 타고 가면 그렇게 밀릴 것도 없고 내 금방간다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마음같아서는 날 내려놓고 고서방 혼자 가라고 하시고 싶겠지만 환자 때문에 안될걸 알고는 자꾸 금방 갈 수 있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옆에서 고서방이 보고는 고개를 살레살레 흔든다. 아부지 오시지말라고.
아침도 굶고 황간도착하여 환자집에 가시 12시가 훨 넘었다
집까지 차가 들어가지 않아서 다시 내가 업고 방 안에 눕혀 드리고 나왔다
나는 왜 이래 힘이 센고야....히.
집에와서 된장에 밥 비벼 먹으니 꿀맛이다.
갈수록 사회는 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다.
출산율을 점점 떨어지고, 우리가 나이가 많은 시대에 이르면 그나마 있던 노인에 대한 가치관도 점점 번지수를 찾을 수가 없어질 터인데, 아...그 시절에 우린 어떻게 살아야하나.
농담으로라도 아들이 엄마랑 같이 살자하면 절대 아이구 귀찮아 너희들이랑 안살래 이런말 하지 말래잖은가. 허기사 어떻게 지금부터 교육을 시켜야 잘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이날 이때까지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니 울 자슥놈은 그걸 보고 배우겠지..하고 위안을 해보는 것이다.
아흐,
건강하게 활기차게 잘 늙어서 늙을 수록 환하게 살아야할텐데....다른기 걱정이 아니고 그게 걱정이다.
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