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반가운 편지

황금횃대 2004. 4. 19. 22:36
어제는 논에 가서 하루종일 논바닥 헤집고 댕기다가
죽지않을 만큼 피곤해서 일 마치고 집에 오니
대문간 우체통에 신문하고 편지가 한 통 와 있다
신문은 의자 위에 때기나발치고, 얼릉 누런 봉투를 열어본다
1호봉투 반절짜리면 1/2호 봉투인가?

봉투 겉봉에는 성공회 대전교구 000신부라고 딱 적혀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눈물이 퍽 쏟아진다.

무슨 편지길래 그렇게 눈물이 퍼억 쏟아지냐구?

작년 가을쯤인가. 내가 운영자로 도와주는 카페에 헌혈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헌혈 카드를 내게 보내주는 사람한테는
달력을 만들어 주겠노라 약속한 글이였다

2700여명이 훨 넘는 카페에서 헌혈카드는 한 장도 오지 않았지만
한달 인가 뒤에 대전 성공회 신부님께서 헌혈카드 세 장을 봉투에
넣어 등기로 보내주셨다.
세상에!!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고맙고 놀랍고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신부님께 달력을 만들어
보내 주었는데, 그 젊은 신부님은 한 번도 답장이 없다가
이번에 큰 맘을 먹고 답장을 보내오신 것이다

편지 봉투 안에는 고르고 골랐음직한 이쁜 편지지에 가지런한
글씨가 적혀있고, 또 한지에는 '연꽃처럼' 이란 글과 '水流花開'라는
글이 붓글씨로 적혀 있었다.
낙관까지 얌전히, 선명하게 찍어 보냈으니 얼마나 귀한지..


이번에 새로운 성당으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변경된 주소까지 알려서


"이슬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과 "꽃은 피고 물은 흐른다"라는
글귀를 인생좌우명으로 여기고 산다는 얼굴도 몰라요 그 신부님 편지가
죽지 않을만큼 피곤한 나를 죽을 필요없는 나로 바꿔놓는다.

한 장의 편지는 이렇게 위대하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