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다래순 편지

황금횃대 2004. 4. 19. 23:06
어제, 비 올때 님들은 무얼 보셨나요
허공에 빨대를 꽂고 물을 빨아 들이는
사월의 다래순을 혹 보셧나요

비 그치길 기다려 달려갔지요
뿌리는 하나인데 넝쿨은 분수처럼 늘어져
마디마디 예쁜 순을 내밀었어요
봉지들고 기어올라가
모조리 훑여서 뜯어 왔지요

내 봉지는 통통해져서 좋은데
마실 갔다 돌아온 다래나무 정령은
홀라당 벗어버린 가지 보고 놀랐겠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다래순 파랗게 데쳐놓고는
자꾸만 고개가 넝쿨 앉은 산자락으로 돌아갑니다
허전한 가지 붙잡고 통곡하는 다래나무
수런수런 위로하고 있을 별빛의 속삭임이
환청처럼 들리는 저녁입니다.

근데, 다래순 무침은 너무 맛있어요
둘이 묵다가 하나 죽어도 나는 몰래요




전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