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해질녘 알러지
황금횃대
2004. 4. 19. 23:10
1.
살구나무 그림자도 아니 뵈는 담벼락 모퉁이는
겨울 한 철 젤 추운 집구석자리다.
목젖이 터져죽은 살구꽃, 그녀들 시신을
반달표 달빗이 긁어 와 담모티에 버리고 사라졌단다
야경꾼 꽁무니에서 수런수런 소문이 돌았고
꿈에라도 보고픈 그녀의 자태를 보려고
하룻 밤새 질경이들이 괴나리 봇짐을 매고
땅 위로 올라 왔다
날것 좋아하는 이들은 우릴 보고
죽은 자슥 불알만지기라 하겠지만
우리는 봐야겠다 목젖 파열된 꽃의 속살을
볕조차 가난한 얼음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먹빛 어둠에서 빛을 호흡하는 법을 익혔던건
........
뭐여? 뭔 말을 할라꼬 이렇게 두둘기고 있냐 시방. 요즘 들어 자주 삼천포로 이야기가 샌다. 아, 삼천포! 이왕 새어버린 김에 삼천포 이야기나 하자.
2.
내 나이 스물너댓 되었을 땐가?
낼모레면 부가가치세 종합해서 신고해야하는데, 사장님이 자료를 맞추어야한다고 머라하신다. 조또 믿을 구석도 없는 경리가 듣기 싫은 소리는 왜 그리 많았는지, 고만 그 말에 괜히 부아가 치밀어 머리 아파서 일찍 퇴근한다는 말만 남기고, 덜컥 회사문을 해가 중천에 훤한데 가방 을러매고 퇴근을 해 버렸다.
그 날 아침에는 비가 내려, 나는 반으로 접히지도 않는 우산을 지팽이처럼 들고 한 손으로는 가방끈을 빙빙 잡아 돌리며 원맨쇼를 하면서 공장 앞 비포장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나오는데, 골목어귀 거북식당 아자씨가 날 보더니,
"어이, 전양 어데 아프나?"
"빌로 아픈데는 없는데 괘히 봄볕이 나를 충동질허네요"
충동질이 몰고간 장소는 대구역
낡은 역사 앞에는 꼬부라진 할머니의 김밥이 있고 뻔데기가 짭쪼름하게 끓고 있고, 인절미가 봄볕에 녹진녹진 녹고 있고, 싹 내미는 알밤이 옆구리가 트게져서 대가리가 거무튀튀하게 굽히고 있다.
아무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데 나홀로 긴 우산을 질질끌며 계단을 올라간다.
부산으로 간다.
부산으로 가는 이유는 딱 하나 뿐이다.
물금 부근의 낙동강을 보기 위해서다.
그놈의 낙동강이 내 인생에 해 준게 뭐가 있단말인가? 그런데도 나는 낙동강이 좋았다.
내 고향 합천을 갈 때 덜컹거리는 버스 안, 뽀얗게 먼지 이는 버스 뒷창 꼬랑지에 숨바꼭질하며 수묵화로 고요했던 낙동강.
강변에 놓여 있을 낙동강 오리알의 안부도 궁금했고, 지난 겨울 지날 동안 머끄댕이를 강바람에 다 쥐어뜯겼을 억세의 안부도 궁금했다.
부산역에 내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진주가는 완행기차를 탄다.
진주에 가는 이유도 딱 하나.
거기에는 헤어진 옛 애인이 있었다
애인이라기는 뭐하지만, 철 없던 나에게 결혼의 희망을 걸고 있었던 남자.
학원 경리를 잠깐 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토목기사 자격증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다. 맨날 입고 오는 옷의 색깔이 수박색 짙은 초록 잠바여서 중앙로 비 쏟아지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던.
우산 한 번 얻어 쓴 인연으로 서로의 끄내끼를 길다랗게 늘려 놓았지
철컥철컥 기차는 완행으로 달려, 아무 바쁠 것 없은 츠자의 목에다 가로왈세로왈 졸음도 달아 주며 진주로 진주로 달렸다.
헤어진 남자는 매정했다
상평동 낡은 다방에서 차 한잔 사 먹이고는 집에 가라한다.
집으로 가긴 싫고 갈 곳도 마땅찮고. 이럴 때 빠지는 곳이 삼천포다.
삼천포로 버스를 타고 간다
사월 말쯤 삼천포로 가는 국도의 가로수는 마악 달기 시작한 새잎들 바람 맞는 통에 자글랑자글랑 소리가 날 듯하다. 작은 세라믹 모빌이 부딪는 소리같이.
어느 듯 해는 저물어 삼천포 주차장엔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다
건물은 제 가죽 그림자를 땅바닥에 늘이우고, 난전의 알전구도 생경한 빛을 내 뿜고 있다 우선 잘 자리를 찾아야지
여관 하나 잡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근처 탁구장에 가서 까까머리 고등학생하고 두어시간 탁구치고 땀 뻘뻘 흘리고는 샤워하고 잤다
아직도 기억한다.
혼자 여관방을 찾는 츠자를 바라보던 주인 아줌마의 그 애매모호한 눈빛을..
이렇게 저녁은 해야하는데 꼼짝하기는 싫고, 해는 산등성이에 붉은 후광만 남긴채 넘어가고, 느릅나무 껍데기는 더욱 쟂빛으로 물들고, 그걸 치어다 보믄 서글프기도 하고 눈꼬랑지에 눈물도 질질 비어져 나오고..뭐 그런 해질녁 알러지가 찾아오면 옛날 그...삼천포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렸던 때가 생각난다.
부록)
그 초록색잠바총각하고는 왜 헤어졌냐고요?
ㅎㅎㅎㅎㅎ
이야기는 짧지만 사연을 길지요 메렁메렁 ㅡ,.ㅡ;;;
상순
살구나무 그림자도 아니 뵈는 담벼락 모퉁이는
겨울 한 철 젤 추운 집구석자리다.
목젖이 터져죽은 살구꽃, 그녀들 시신을
반달표 달빗이 긁어 와 담모티에 버리고 사라졌단다
야경꾼 꽁무니에서 수런수런 소문이 돌았고
꿈에라도 보고픈 그녀의 자태를 보려고
하룻 밤새 질경이들이 괴나리 봇짐을 매고
땅 위로 올라 왔다
날것 좋아하는 이들은 우릴 보고
죽은 자슥 불알만지기라 하겠지만
우리는 봐야겠다 목젖 파열된 꽃의 속살을
볕조차 가난한 얼음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먹빛 어둠에서 빛을 호흡하는 법을 익혔던건
........
뭐여? 뭔 말을 할라꼬 이렇게 두둘기고 있냐 시방. 요즘 들어 자주 삼천포로 이야기가 샌다. 아, 삼천포! 이왕 새어버린 김에 삼천포 이야기나 하자.
2.
내 나이 스물너댓 되었을 땐가?
낼모레면 부가가치세 종합해서 신고해야하는데, 사장님이 자료를 맞추어야한다고 머라하신다. 조또 믿을 구석도 없는 경리가 듣기 싫은 소리는 왜 그리 많았는지, 고만 그 말에 괜히 부아가 치밀어 머리 아파서 일찍 퇴근한다는 말만 남기고, 덜컥 회사문을 해가 중천에 훤한데 가방 을러매고 퇴근을 해 버렸다.
그 날 아침에는 비가 내려, 나는 반으로 접히지도 않는 우산을 지팽이처럼 들고 한 손으로는 가방끈을 빙빙 잡아 돌리며 원맨쇼를 하면서 공장 앞 비포장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나오는데, 골목어귀 거북식당 아자씨가 날 보더니,
"어이, 전양 어데 아프나?"
"빌로 아픈데는 없는데 괘히 봄볕이 나를 충동질허네요"
충동질이 몰고간 장소는 대구역
낡은 역사 앞에는 꼬부라진 할머니의 김밥이 있고 뻔데기가 짭쪼름하게 끓고 있고, 인절미가 봄볕에 녹진녹진 녹고 있고, 싹 내미는 알밤이 옆구리가 트게져서 대가리가 거무튀튀하게 굽히고 있다.
아무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데 나홀로 긴 우산을 질질끌며 계단을 올라간다.
부산으로 간다.
부산으로 가는 이유는 딱 하나 뿐이다.
물금 부근의 낙동강을 보기 위해서다.
그놈의 낙동강이 내 인생에 해 준게 뭐가 있단말인가? 그런데도 나는 낙동강이 좋았다.
내 고향 합천을 갈 때 덜컹거리는 버스 안, 뽀얗게 먼지 이는 버스 뒷창 꼬랑지에 숨바꼭질하며 수묵화로 고요했던 낙동강.
강변에 놓여 있을 낙동강 오리알의 안부도 궁금했고, 지난 겨울 지날 동안 머끄댕이를 강바람에 다 쥐어뜯겼을 억세의 안부도 궁금했다.
부산역에 내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진주가는 완행기차를 탄다.
진주에 가는 이유도 딱 하나.
거기에는 헤어진 옛 애인이 있었다
애인이라기는 뭐하지만, 철 없던 나에게 결혼의 희망을 걸고 있었던 남자.
학원 경리를 잠깐 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토목기사 자격증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다. 맨날 입고 오는 옷의 색깔이 수박색 짙은 초록 잠바여서 중앙로 비 쏟아지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던.
우산 한 번 얻어 쓴 인연으로 서로의 끄내끼를 길다랗게 늘려 놓았지
철컥철컥 기차는 완행으로 달려, 아무 바쁠 것 없은 츠자의 목에다 가로왈세로왈 졸음도 달아 주며 진주로 진주로 달렸다.
헤어진 남자는 매정했다
상평동 낡은 다방에서 차 한잔 사 먹이고는 집에 가라한다.
집으로 가긴 싫고 갈 곳도 마땅찮고. 이럴 때 빠지는 곳이 삼천포다.
삼천포로 버스를 타고 간다
사월 말쯤 삼천포로 가는 국도의 가로수는 마악 달기 시작한 새잎들 바람 맞는 통에 자글랑자글랑 소리가 날 듯하다. 작은 세라믹 모빌이 부딪는 소리같이.
어느 듯 해는 저물어 삼천포 주차장엔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다
건물은 제 가죽 그림자를 땅바닥에 늘이우고, 난전의 알전구도 생경한 빛을 내 뿜고 있다 우선 잘 자리를 찾아야지
여관 하나 잡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근처 탁구장에 가서 까까머리 고등학생하고 두어시간 탁구치고 땀 뻘뻘 흘리고는 샤워하고 잤다
아직도 기억한다.
혼자 여관방을 찾는 츠자를 바라보던 주인 아줌마의 그 애매모호한 눈빛을..
이렇게 저녁은 해야하는데 꼼짝하기는 싫고, 해는 산등성이에 붉은 후광만 남긴채 넘어가고, 느릅나무 껍데기는 더욱 쟂빛으로 물들고, 그걸 치어다 보믄 서글프기도 하고 눈꼬랑지에 눈물도 질질 비어져 나오고..뭐 그런 해질녁 알러지가 찾아오면 옛날 그...삼천포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렸던 때가 생각난다.
부록)
그 초록색잠바총각하고는 왜 헤어졌냐고요?
ㅎㅎㅎㅎㅎ
이야기는 짧지만 사연을 길지요 메렁메렁 ㅡ,.ㅡ;;;
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