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반찬뚜껑과 사는 일

황금횃대 2004. 4. 28. 09:51
사는 일을 한 마디로 딱 뿌라지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삐그덕대는 삶은 더더욱 그렇게 명료하게 표현할 수가 없는 일.

아침에 설거지를 하면서 먹다 남은 고등어를 버리면서 동그란 접시의 뚜껑으로
덮어 놓은 것을 씼었는데, 모두 경험한 바가 있듯이 요즘 반찬 그릇은
용기는 도자기재질이고 뚜껑은 플라스틱으로 된것이 있다.
더러 용기가 깨지고 뚜껑만 남아, 이것이 어디 쓸 일이 있을까 모아 놓은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뜨거운 것을 덮는 바람에 뚜껑은 망가지고 그릇만 남은 것도
있다. 부엌 살림이란게 꼭 무늬 맞춰 살 수도 없고, 위 아래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구색을 맞춰서도 살 수 없는 일.
그래서 대강 그릇의 크기와 뚜껑의 크기가 비슷한 것을 맞춰 쓰기도 한다.

오늘 고등어를 덮었던 뚜껑도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다. 테두리가 금이 가는 바람에
둥근 테두리 안의 반투명 유리가 분리될 조짐을 보이는 뚜껑이다.
그래도 이 뚜껑의 용기는 말짱하다. 하얀 도자기에 작은 꽃무늬가 있는 그릇이다.
이 뚜껑을 버리고 다른 뚜껑을 덮어 보아도 어지간하면 맞을 것 같은데도 안 맞다
많이도 아니고 딱, 1% 안 맞다.
이것 저것 돌아댕기는 뚜껑을 이것이 맞을까, 저것이 맞을까 덮어 봐도 맹 그렇다
딱, 1% 안맞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갈 때까지 간다며 그 뚜껑을 버리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


사람의 관계도 이렇겠지. 특히 부부의 일이라면 말이다.
조금 모양이 흉하고, 속궁합이 찌그러져도 그냥 맞춰 살고 있는 것은, 아무리 잘나 보이는 뚜껑이라도 다른 그릇의 뚜껑과는 맞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지지고 볶는 세월이라도 세월을 같이하며 서로가 맞기 위해 깎아내고 다듬은 결과는 반드시 있을 것 아닌가. 울컥 하는 마음에 저 인간 아니면 내가 못살까 하지만, 다른 뚜껑 덮어보면 딱, 1% 안 맞다. 1% 맞게 또 깎아내고 궁글려야하는 세월을 생각하면...하이고..고만 말지. 그렇게 깨진 뚜껑이라도 맞춰 덮고 사는게다
하루종일 별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놀지라도 별다른 느낌이 없건만, 짧은 시간에 하는 아침 설거지 때는 더러 빛나는 깨달음이 온다. 이런 날은 기분이 좋지를.


부엌 쪽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계절의 여왕님, 딱 오월을 기다리는 뜨락의 풍경이다.
빗소리에 귀씻고 나온 가죽나무 이파리와 사철나무 이파리가 기름을 칠한 듯 반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한 아침이다...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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