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6. 3. 6. 12:03

 

 

어제는 무시구딩이에서 무를 한 광주리나 꺼냈어요

지난 가을 저정무인데 울 시동생이 무시 구디를 얼마나 깊게 파서 묻었던지

정작 무 농사는 잘 지어놓고 겨울에 그걸 꺼내지 못해 못 먹었네요

 

아무리 바람 안 들어가게 갈무리를 잘 해 놨다 싶어도 계절 앞에 묵은 채소들은 꼼짝마라여

어느 듯 무시 몸에는 바람이 들어 하얀 바람끼가 번져갑니다

잘못하다간 아까운 무시 먹어 보지도 못하고 다 버리겠다 싶어서 저녁 무렵에 무시 구디를 전격 습격 했지요. 숩격이 가당찮다구요? 아닙니다. 부엌칼 들고 쳐들어 갔으니 습격 맞습니다.

 

짚으로 아구리를 콱 틀어 막은 걸 안간힘을 다해서 뽑아내고 첫번째 시도로 팔을 넣어 봤는데

무 에게는 가 닿지를 않는거라. 결국 칼을 쓸 밖에요

칼을 쥐고는 깊숙이 똥궁디를 쳐들고 한껏 팔을 밀어 넣어서 칼끝에 무가 닿이기만 하면 사정없이 찔러서 건져내는 겁니다.

 

울 딸이 내가 그러고 있으니 우스워서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데 세상에나...허리며 커다란 궁뎅이 맨살이 다 나왔어요 나도 놀랬네요 내 궁뎅이가 그렇게 큰 줄...

그걸 수돗간에다 옮겨놓고 쇠수세미로 겉을 벅벅 문질러 씻어 놓구선 밤에 무우말랭이를 만들기 위해 썰어야지...했는데.

 

무단히 저녁 먹고 앉았는데 바느질이 하고 싶었어요

꿰맬 양말도 없고 해서 집에 굴러 다니는 베쪼까리 잘라다 핸드폰 고리를 만들었어요

큰 것은 만들래면 힘도 들고 지레 지치는데 요렇게 작은 것은 검지에다 천을 싹, 돌려 감아서는

한 땀, 한, 땀 박음질하면 재미나요.

 

고스방이 티비를 보다가 그걸 들여다 보고 박고 있는 날 보더니 신기한 듯 쳐다봐요

여편네 승질로 봐서는 저런거 전혀 안 하고 못 할 것같은데 의외로 자주 바늘 쌈지를 끌어 안고 사는 걸 보니 신기한가봐요. 거 뭐하는데? 하고 묻습니다.

 

"핸드폰 고리 만들자나"

"그걸 뭐 궁상시럽게 만들고 있냐 그냥 들고 댕기면 되지"

그러는 자기는 왜 염주알을 낀 핸드폰 고리를 해서 다니냐구요오오오..

 

한 시간을 코 박구서 맹글고 있습니다.

 

그걸 다 만들어 핸드폰에 끼워 놓구서야 수돗간 가서 무 가져다 밤에 혼자 칼 갈아가면서 무를 썰었네요.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다가 코를 골며 자는 고스방.

 

무를 썰면서 간간 티비를 보니 야심한 밤이라 <썸머 타임>이란 영화를 보내주데요

왠 남자가 이층 나무 옹이 구멍을 통해 아래층 여자를 훔쳐보는.

여자가 속치마만 입고 잡지책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선풍기 바람이 여자쪽으로 돌아 올 때마다 속치마 인견자락이 팔락팔락 보일 듯 말 듯 움직이는거라...나는 그러면서 고스방을 멀거니 쳐다봤죠. 아하...저런 걸 보고 들어오니 늦은 밤 잠 자는 나를 찝쩍거리는구나.

 

무를 다 썰고 나니 한 시가 훌쩍 넘었세요

고스방 깨워 방으로 들여 보니고 씻고 나도 자러 들어갔는데..

 

아, 이런..

고스방이 하던 그 버릇을 나도 해 보고 싶은거라..

비몽사몽 들어 온 고스방

내가 찰싹 달라 붙으니까 이게 왠 떡이냐하며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

 

철도 파업이 풀린 경부선 선로에는 밤새도록 몇 번의 기차가 지나갔는지

나 이외에는 아모도 몰랐답니다.

 

 

핸드폰고리가 너무 크게 만들어져서 핸드폰 방석쯤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