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마음
대상포진이란게 수포보다는 통증이 훨 사람을 괴롭힌다
가히 통증의 <왕중왕>이라 불리울만 하단다.
아침에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뒤안 볕에 빨래 몇 가지 널고 들어오니
어머님 방에서 어머님이 문을 닫고서는 화가 치민 목소리로 뭐라고 혼자 말씀을 하신다.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알아 들을 수가 없어 방문 쪽에 귀를 기울였으나 분노로 가득 찬
음성이라는 것만 눈치챌 뿐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짐짓 어머님의 기분을 살필려고 방문을 두드리며
"어머님 뭐 흰빨래꺼리가 없어요 지금 세탁기 흰빨래 돌리는데.."
말꼬리를 늘이며 찬찬히 어머님 얼굴을 살핀다.
그러자 어머님은 금새 목소리를 바꾸어서 빨래감이 없다고 말씀을 하신다.
분명 나에게 화가 나신 것은 아닌데 무엇이 못 마땅하셔서 그러시는걸까..
내가 못마땅하시면 목소리가 대번 표시가 난다. 그래서 나는 금방 알아 차릴 수가 있다.
요가를 갔다오고 인삼죽을 데펴 어머님 간식으로 드리면서 양상추와 쌈채 샐러드를 해서 드리니
죽을 겨우 드시고 양상추만 몇 개 골라 드시더니 숟갈을 놓으신다.
점심 때가 되어 시동생이 분무기 적재함을 고친다고 밖에서 뚝딱 거리는데 어머님이
귀찮지만 떡국을 끓여 달라고 하신다.
떡국 한 냄비 끓여서 시동생과 어머님께 떠 드리고 나니 고스방이 점심 먹으러 들어온다
남은 떡국을 퍼주고 밥을 한 그릇 곁들여 놓고 먹고 난 뒤.
떡국 한 그릇을 다 드신 어머님이 거실로 나가시지 않고 고스방이 마지막 수저질을 하고 있는 동안 하소연을 하신다.
"내가 입이 자꾸 마르기에 할아바이한테 베지밀을 좀 사오랬더니 그걸 어디서 사는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거 하나 사러 이집저집 돌아댕겨야하냐! 면서 퉁방을 주시더란다. 이집저집 댕길거 없이 농업(농협을 그렇게 말씀하심)연쇄점에 가면 다 있어. 댕기긴 왜 댕겨? 죽을 때 돈을 얼매나 싸가지고 갈랑가 왜 그래 돈돈, 하는지 모르겠어. (어머님은 화가 나셔서 이부분에서는 목소리까지 떨리신다) 밤새도록 내가 그케 아파서 끙끙 거리면 헛말이라도 어디가 아픈가 한번 물어보기라도 하지 멜인정한 인간 같으니라고. 고스방 독하다 독하다해도 그렇게 맬인정(몰인정)하게 독한 줄 몰랐네. 저는 아프면 죽는 소릴 해대면서... 눈물이 뚝뚝 나올라 하신다."
"이그..아버님도 왜 그러시나 모르겠네요. 그래도 어머님이 아버님 수발 다 들어주시고 하시는데...좀 살갑게 하시지."
"아이, 저번에도 결혼기념일이라면서 어데 나가서 뭐 먹으까 물어 보길레 내동 오리집식당에 가서 먹으까..하고 대답하니까 거긴 문 닫고 일 안 한다고 그러잖아. 그러고는 끝이야. 내가 나가서 먹자했나 자기가 먼저 말을 했으면 거기 일 안하믄 다른데 가믄 될거아냐. 말만 삐쭉 내놓고는 말아."
어머님은 엄청 서운하신가보다.
"내일 어머님 병원 또 가셔야하는데 아버님이 돈 버시는 것만 신경쓰시면 병원가는거 싫어하실건데 어떡하지요?"했더니
"씨발 돈은 돈이고 나는 나니까 아파서 병원가야겠어. 나도 못 참앗!"
곧 일촉즉발, 험난난 말씀을 하셔서 그런가..하고 있었는데
아버님 점심 드시고 나가시고 자두밭에 전지 해 놓은 나뭇가지를 주으러 갔다.
날 추워진다더니 골짝 밭에는 바람이 구름을 따라 심상찮게 불어왔다 몰려간다
낫으로 잔가지를 치고, 긴 것은 마디를 꺾어서 대충 주워 모으다가 해가 져서 집에 왔더니 배가 고팠다.
얼릉 요기를 할라고 파전을 오징어 썰어 넣어 한 넙데기 구워서 후라이판 째로 마루로 들고와서는 초장에 찍어 먹으니 뜨끈뜨끈한게 먹을 만 하다.
저녁에 아버님 들어오시기 전에 잠깐 운동하러 회관에 갔다왔더니 그 사이 아버님이 저녁 드시러 들어오셨다. 상을 보고 계시는 중이라 내가 얼른 진지를 퍼 드리고 국을 뜨는데 어머님이 후라이팬에 파전을 구워놓으셨다. 나 같으면 그렇게 고스방이 서운하게 하면 파전이고 뭐고 해줄 생각도 않을텐데..어머님은 또 서운한 맘을 접으시고 아버님 드실 반찬을 만들어 놓으셨다.
어이구...속으로.
부부란 참 뭘까...울 아버님 어머님 올해로 혼인하신지 66년이 되시는데, 그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미움이고 이쁨이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일까. 낮에 말씀하실 때는 서운함이 뚝, 뚝, 떨어지셨는데 저녁에는 그 마음이 없으니.
아버님 드실 약을 아버님 진지 다 드시기 전까지 물까지 떠다 방에서 챙기신다.
평생을 그렇게 아버님 받들며 살았으니 아버님은 그저 받는것 밖에 못하시지.
큰소리 나는거 내 한 몸 참으면 집구석 조용하지 싶어 맨날 참고만 살으신 우리 어머님. 어머님은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시지만, 내 아는 언니의 말처럼, 그런 배려가 기실 상대방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악습을 가지게 되고 자기만 받는 것으로 고착화 되니 그 또한 좋은 것은 아니다.
결국 어머님이 이렇게 서운한 일을 당하시는 것도 젊은 날 아버님에게 지나친 배려를 해서 그리 된 것이다. 사람이 현명해 진다는 것은 무조건 참고, 무조건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어머님을 통해서 절실히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