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있잖아요. 나는 요새 두 개의 세계에 사는거 같아요
따지고 보면 두 세계가 모두 사람이 얽혀 돌아가는 바탕이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쪼매 그 색깔이 달라요.
매일 눈 뜨면 부딪치고 잔소리하는 식구들이나, 삽짝을 나서면 만나는 아랫집 할머니, 혹은 회관 근방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 농협에 들를 때 보게되면 인사나누는 창구 직원들...이런 사람들은 실제 생활 가운데 만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의 세계, 즉 온라인 속에 나와 연관이 있거나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이예요.
그들은 실제로 내가 사는 곳이 어딘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게고, 내가 어떻게 생거먹은 아줌씬지 짐작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눈 뜨고 아침 일과를 대충 추스려 놓고는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오로지 글과 이미지 만으로 그들의 일상을 확인하고 별 사건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을 만나 안도의 숨을 내 쉬기도 하고 그들의 사연에 울고 웃기도 한다지요.
어떨 땐 무슨 조화인지. 실제 내하고 부딪는 이웃이나 가족보다 온라인 상의 그들이 더 실체적으로 내 삶의 페이지에 배치된 등장인물로 느껴질 때가 더 많아요
그렇게 눈만 뜨면 연결되어 확인 되는 그들의 삶들이 때로 고되고 말도 안 되는 불합리 속에 놓이게 되면, 어쩌지 못하는 위치에서 혼자 속앓이만 하는거지요.
예전, 아주 오래전, 쿼바디스에 나오는 로버트 테일러란 영화배우를 보고 혼자 속앓이를 할 때처럼 말이죠. 스크린에 비친 확대된 그의 모습에 나는 한 없이 반해서 꿈 속에서도 그를 그리워할 정도가 됐으니 말이죠. 그 때가 중학교 일학년 때입니다.
오후에 시간이 좀 있어서 자두밭에 냉이를 캐러 갔어요. 호미로 냉이 뿌래이를 호벼 파면서도 마음은 진주라 천리길을 달려 가기도 하고, 또 서울의 외곽지역에 사는 그녀 생각을 하느라 호미끝에 냉이가 캐져 멀리 나가떨어지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몸은 무의식으로 그냥 움직이는데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방향을 잡아 그 가닥이 닿는 곳에 옮겨 앉습니다.
모쪼록 내 친구의 말처럼,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꿈 속에서조차 슬픈일 없기를...하며 빌어보지만 세상의 일이란게 꼭 염원처럼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답답고 애닯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농촌정보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컴퓨터 자체 교육이 있는 곳에 달려갑니다. 집구석에 있어봐야 답답하기만 하고, 어스름이 내리는 촌길을 달리다보면 오만가지 회한이 차가 달리는 속력으로 확,확 가슴에 안깁니다.
모리마을이라는 곳에 가서 사람들과 더불어 검색연습을 하고 저녁을 같이 먹는데 배도 촐촐하던 차에 거푸 소주 다섯잔을 마셨습니다. 역시 술은 약간 배가 고플 때 마셔야 제격입니다.
쓴 소주가 입에 짝, 쫙, 달라 붙는 느낌. 으흐흐흐흐. 좋습니다.
거기다 돼지고기 향정살을 알맞게 구워 깻잎 쌈을 싸서 입안으로 가뿐히 밀어 넣어요
석잔 입 안에다 털어 넣으니 몸 전체가 공중부양하는거 같어요. 그 알딸딸하면서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져 오는 느낌. 그러면서도 공연히 히죽헤죽 웃으며 주변 공간개념이 약간 모질라는 듯한 아리까리한 상태. 우~~ 좋습니다.
된장찌개를 떠 먹으로 가는 숟가락이 방향각도를 잘못 잡아 투가리에 탁탁 부딪치는구만요.
그냥 요새는 온라인의 연장 오프라인을 체험하면서 사람 살아가는 일이 대추나무 연줄 걸리 듯 만장지장 걸려있는 일임을 실감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