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숨쉬기
황금횃대
2006. 3. 30. 21:31
오렌지를 사러가는데 한참 달리다가 차를 세워요 그가.
"저거 사진 한 장 찍구요 잠깐만요"
"티검불 태우는 모양인데 저게 무슨 좋은 풍경이라고"
"아니예요. 저런 불 사진은 찍기 힘들어요"
나는 마음에 먹구름이 잔뜩 끼여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앉아 있었어요
그는 잠깐만요..하더니 내려서 사진을 찍고 뒷자석에 사진기를 놓고는 오렌지를 사러 김천까지 갔다 왔어요
아모 말이 없는 내게 그는 <별주부전>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토끼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합니다. 내가 토끼띠예요.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요
속으로는 너무 미안했어요
내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음을 알고는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나는 사진 찍을 동안 불 쪽으로 눈길도 한번 주지 않았네요
내 심정이 저 불보다 더 활활 타고 있었응께.
나중에 그가 올린 사진을 봅니다. 아하.
눈이 맑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바라보는 사물의 간극은 얼마나 큰 것인가
나는 부끄럽고 부끄러워 그 사진을 몰래 가져왔어요
살면서 이런 애인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