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일기
어젯밤부터 뒷등때기가 어찌나 아프던지 아주 굴신을 못하겠더라구요
이 무슨 때아닌 조화인가, 내가 뭘 들다가 삐끗하였나 아니면 컴퓨터에 앉았을 때 자세가 좋지 않았나 혼자 무척 끙끙대며 죙일 아프게 지냈어요. 아 그런데 이유는 딴게 아니였어요
밤에 그렇게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 긋는데 무섭게 빗방울이 떨어졌어요
비 올 징조로 몸뚱이가 날궂이를 한 것이였어요. 이런 제길룡.
하도 아프기에 밤새도록 전기찜질팩을 등짝밑에 깔아 놓고는 몸살 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잤더니
찜질팩은 뜨겁지 약발은 받지 몸에서 어찌 열이 나든동 이불을 다 차뗀지고 자니 고스방이 수시로 여편네 감기 든다고 이불을 끌어 덮어 줍니다.
근데 그렇게만 덮어주면 아모 상관없이 잘 잤을거인데. 이녀르꺼 이불 꺼 땡기 덮어 줄때마다 더듬어싸니 내가 잠을 푹 잘 수가 없재요. 밤새도록 뜨거워서 몸뚱이를 찌짐 뒤베듯이 뒤빈다고 잠 못 자, 쑤석거리니 잠 못 자, 뭔 까닭인지 밤을 새며 하늘은 저리도 분노의 눈물을 뿌려대니 그 요란한 소리에 잠 못 자...그러고 뒤척이다 깨고 나니 다섯시 반이 조금 넘었세요
그 질로 눈이 뜨여서 일어나지는 않고 양철 지붕 위를 때리며 쏟아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재요
새벽에 깨서 빗소리 들으면 사람의 마음이란게 또 이유없이 고즈넉해지는게 꼭 해질 때의 적막강산 외로운 늑대처럼 어데로 발길을 돌려야할지, 마음을 갈피를 틀어야할지 잠시 갈등이 일어요
그러나 뭐 어쩌겠어요 오늘도 고압가스기사 전모여편네는 이불을 걷어내고 묵지룩한 허리를 감싸쥐고는 일어나 압력밥솥에 밥을 앉히러 갑니다.
쌀을 씻느라고 꾸부정히 엎드려 수돗물을 받았다 흘려내렸다 하는 동안, 전모 여편네의 스방 고모씨가 뒤에 와서는 슬쩍 제 앞부분을 여편네 궁뎅이에 들이대며 수작을 걸어요.
"와이캐싸요 밥 앉히야 되능구만"
"쪼뱅아...좋으면 좋다구 구래. 다 이렇게 사는겨"
그러면서 방구 한 방 푸르르르 뀌고는 세면실로 들어갑니다.
아침먹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어제부터 불린 콩을 가마솥에 앉혔어요.
청국장 가루를 다 먹어간다고 며칠 전부터 콩삶아 띄워서 청국장 가루 만들어 놓으랬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어제 콩을 담궜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불 지필리하니 비가 쏟아집니다.
그래서 가스버너 연결해서 콩을 한번 끓였다가 불구멍을 낮춰 놓고는 점심먹고 어쩌고 하면서 콩 삶는 다는 사실을 깜박 잊었세요. 제작년인가에도 청국장 만든다고 콩 한 말 삶다가 다 태워 먹고 솥 밑구녕까지 녹아 내리게 한 적이 있었는데 어이구나 잊어 먹었으니 큰일 났습니다.
점심 먹고 어머님은 회관 가시고 혼자 집을 보면서 아버님 점심 드시러 들어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점심 드리고, 그러고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면사무소의 서예, 꽃꽂이 전시회에 갔어요. 콩을 얹어 놓았다는 사실은 이제 물을 건너 산을 넘어 바다 가운데 떠 있을 만큼 까마득히 잊어 먹고요.
면사무소에 가서 서예작품 보고 이쁜 꽃꽂이를 보고 감탄을 하고, 또 거기서 친구네 문방구 놀러 가서는 주끼다가 집에 저녁하러 왔는데도 그녀르 콩솥단지 생각은 꿈에도 못했어요
내가 풋고추를 다져 아버님이 잘 드시는 고추볶음을 만드는데 고스방이 콩나물을 사가지고 왔세요. 콩나물 국이 먹고 싶어서 사왔다며 자기가 물 받아 콩나물을 씻어주기까지 하네요
그럼시롱 하는 말이,
"장모님이 내가 이렇게 콩나물 대가리 건지고 있는걸 보면 좋아하실고야, 아이고 고스방이 콩나물도 다 씨쳐(씻어) 주네. 이쁜짓을 저리 하니 참 고맙네"이럼씨롱 친정 엄마 말투를 흉내내서 내게 이야기합니다. 그럼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 실쩌기 웃어주면 되재요.
콩나물 앉혀서 삶고 고추다진것 볶아 놓고 있으니 엄니께서 오셨세요. 오늘이 또 황간사는 토끼띠 계모임 친구들하고 모임이 있는 날이라. 고스방이 밥 먹기 전에 차 찾는 전화가 와서 나를 식당까지 델다 주고는 차를 대주고 다시 밥 먹으러 집에 들어갔는데.
식당에서 내가 밥을 쪼매 먹고 소주 석 잔째 감자탕의 돼지등뼈 살을 발라 안주하면서 마악 넘기고 있는데 띨렐렐레띨레레레레레...하고 전화가 울어요 받아보니 고스방이라.
"야! 니 콩 얹어 놓은거 어째됐어!" 귀가 멍하도록 괌을 지릅니다.
"아이고 내가 깜박했네 콩 다 탔어요 어쨌어요" 숟가락이며 술잔을 집어덴지고 바로 집으로 뛰어갔어요. 비바람은 휭휭 몰아치는데 소주 석 잔 마신게 귀밑까지 올라와 집까지 뛰어가는데 아주 죽을 맛이래요. 얼굴이 열이 올라 벌겋게 됐어요. 냅다 집 뒤안으로 뛰어가 콩 솥을 들여다보니
하이고나....천만다행 타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불을 약하게 해뒀는데 날씨가 오늘 여간 조화를 부리지 않았으니 그만 불이 꺼졌나봐요. 하늘이 도우사 콩도 무사하고 솥도 무사합니다.
어머님은 조금 신경질이 나셨지요. 그런데도 고스방이 옆에서 뭐라고 말을 시키며 짚까지 갖다 대령하니 나한테 뭐라고 말씀을 못하시고 어찌어찌 해라고 이야기만 하십니다. 고스방은 어머님 옆에서 시중을 들다가도 나를 보면 연신 눈알을 희득번득하게 굴리는데...내가 잘못했으니 나는 끽 소리도 못했시요. 거개다 술은 올라 얼굴은 뻘겋지.
내가 다 알아요. 어머님 입 막음 하니라고 먼저 그렇게 고스방이 선수 치는 것.
ㅎㅎㅎㅎ내가 누굽니까 눈치 구단이잖여.
혼비백산 정신없는 저녁 시간이 가고 하루를 가마이 앉아 생각해봉께로 내가 요새 무엇에 정신을 팔고 사는가 퍼뜩 정신이 들더라구요. 이런 마음이 들 때는 다른거 다 뿌리치고 살림살이에 신경을 바짝 써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호맹이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구요.
당분간 식구들에게 몰입하고, 살림살이에 집중해야긋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