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호작질

니가 농사꾼이란 말가?

황금횃대 2006. 7. 28. 09:01

글이란 늘굴라하면 자꾸 지끼면 되고

짧게 할라믄 요점만 이야기하면 된다.

 

 

"허이고 니가 농사꾼이란 말가?"

이건 요점만 이야기 한거구 글을 좀더 질게 늘굴라하면 가마이 있는 고스방을 불러 와설랑 대사 한 마디 주면서 시작한다.

 

 

"야이 여편네야. 내가 아래께 분명이 수통을 비닐로 막아놨응께 그거 빼서 논물 빼라 했지 언제..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당신이 비닐어쩌구 했잖아요. 그래서 내가 물꼬에 비닐깔아 물 내려오게 해놨는거 걷어서 장화 뒷축으로 물꼬 꼭꼭 밟아 물빠지게 했는데 와카능교?"

"어이구우우~ 여편네야 내가 언제 그거 빼라카드나  콘크리트 수로에 보면 파이프로 물꼬 내놨는거 그거 보라했지. 앓느니 죽지 저걸 내가 믿고 물 빼노라 했으니..끌끌."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든다

지난 봄에 앞들 논은 관계수로를 콘크리트로 다시 했는데 집집마다 물이 들어가고 나오는 곳을 드릴로 구멍을 뚫어 파이프로 물을 넣고 빼내게 만들어놨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 구멍하나로는 물을 다 못 빼니까 더러 논둑 위로도 물꼬를 얇팍하게 내서 물이 넘치도록 해 놓았는데 나는 옛날 생각만 하고 빗속을 우산 쓰고 가서는 잘 한다고 한게 비닐이라는 말은 들어서 그걸 걷어 내고는 장홧발로 물꼬의 흙을 팍팍 밟아 물이 더 잘 빠지게 해놓고 와서는 태평시리 앉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 놓은것이 그제일이라, 어제 하루는 용케 비가 오지않고 지나갔다.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난 고스방이 씻고는 운동삼아 걸어간다고 논에 갔다와서는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콧구멍이 두 갱께 숨 막히지 않고 살아가지. 여편네 그러고서도 인터넷 들어가서는 농사를 잘 짓내, 그 농사 내가 다 짓네...하고 구라칠거 아냐"

"내 농사 잘 짓는다는 이야기 한 적 없는데요"하고 얼버무리지만 어느결에 뒤꼭대기가 확확 대는게 불이 난다. 목까지 뜨거워진다.

 

내가 생각해도 참 농사에는 아무 아는 것이 없다. 그냥 농약치러 가면 줄이나 설렁설렁 잡아 주고 포도 순 따고...그러다 아카시아 꽃잎이 할랑할랑 떨어지면 침떨어지게 입 벌리고 앉아 이뿌다 소리나 실실하는. 뭐 이런거 밖에는.

옥수수를 언제 심는지, 흰콩은 또 언제 심는지, 갈 배추 무는 언제 갈아야하는지, 양파는 무엇으로 씨를 하는지..도무지 모르는 일 투성이다. 그러면서도 살뜰이 알 생각도 없다. 개좆이나 농사도 벨로 짓는거 없음시롱 겁이 많아서는 그런거 알토란같이 꿰고 앉았으면 내한테 다 떠맡길 것 같은 잔대가리만 굴리는 것이다. 내가 이렇다.

 

그렇다고 뭐 살림을 짭질받게 사나, 그것도 아니구 이리저리 내 신세를 구실려보면 참말로 딱 뿌러지게 잘 하는것은 한 대가리도 없다. 뭣이든 처삼촌 벌초하드키 설렁설렁하다. 그러면서도 관여하는 오지랖은 넓어서 이구석 저구석 샛바닥 안 갖다대는기 없다. 못났다.

 

 

바람이 설설 치는데도 하늘은 잔뜩 내려앉아 비를 머금었다. 죙일 선풍이 틀어 말려도 꼽꼬부리한 빨래를 대충 개어놓고, <니가 그러고도 농사꾼이가>하는 지청구 들은 마당에, 꼴란 반항기는 있어가꼬

아침에 설거지 할 때는 여보란 듯이 씽크대문짝을 비누칠해서 다 닦구, 선풍기 먼지 끼인 것도 솔로 싹싹 씻어서 조립했네. . 삐질삐질 배어나오는 땀을 식히느라 퍼질고 앉아서는 마악 조립한 선풍기에 스위치를 넣으니 맑고 시원한 바람이 왜앵~ 나온다.

 

새대가리 여편네는 아침 지청구는 어데다 갖다 묻고 고만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설랑

 

' 내 손 안가 면 이런 깨깟한 바람이 어데서 한오래기 나올라구 까불지 마!'

속으로 씨부렁거리고는 히히 웃어 보는 것이다. 이러구러 위안하고 사는 나,

 

아,

참말로 지지리도 못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