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6. 9. 7. 21:31

 

 

 

포도 따다보면

내고장 구월은 다 간다

천지에 포도 향기가 가득하고

길을 가로지르는 경운기와 화물차는

포도를 따서 담은 박스와 콘티로 넘쳐난다

포도 일 끝나면

티켓다방 아가씨는 노총각들과 불고기도 같이 먹고

허름한 가겟방에 또래들이 모이면

연신연신 다방커피가 날라진다

 

그깟 커피

일회용으로 타 먹어도 얼마든지 맛나는구만

꼭 다방 가씨나 불러서 먹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나이든 아지매들은 입술을 부러뜨리며 흉을 보지만

거칠고 땀내나는 손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은 그네들 뿐이다.

 

밤 공기는 시릿시릿 차갑고

낮에는 어설픈 중 머리 벗기게 뜨겁다면

올해 포도는 거짓말 쪼매 보태서

까무라치게 달 것인데...

 

농사란건 뭐 예상하는대로

척척 맛들어주는건 아니니까.

 

구월에는 달력도 몇 장 못 만들어 보냈다

서방은 아파서 병원 침대에 누워 옴짝달싹 힘들게 해쌌는데

나는 옆에 침대에 궁디 쳐들고 그림그릴려니.

그렇다고 내가 스방한테 연애편지든 감사 편지든 그런거 자주 써봤냐하믄 그것도 아니구

고스방 한테는 딱 한 번 써 봤응께.

그게 언제냐하면

 

첫 딸 낳고 친정가서 산후 조리하는데

한달 거진 다 되어가니 스방이 와 그리 보고 싶던지

그래서 대구 친정집에서 편지 한 통써서 고스방한테 부쳤는데

한 맻 년을 지갑속에 넣어 보관하더니 요새는 어디로 흘러버린 눈치

 

구월은 하루하루

포도향기처럼 익어간다.

오늘은 음력으로 보름인지

마당 치우고 설핏 고개들어 하늘보니

둥그런 보름달이 훠언하다

 

꼭 내 얼굴같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