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쿠알라로 가는
작년,
인사동 나들이 때 사온 한지를 편지지 크기로 잘랐지
몇 군데를 들러보고 골라서 산 것인데 옛날 내 아는 이가 사서 보낸 준 것보다는 이쁘질 않아.
내가 늘 한지에 편지를 쓰니 서울 사는 사람들이나 혹, 지방 사는 사람들도 인사동 발걸음을 하면 내 생각이 젤 먼저 난다고 하네. 그럴 걸 보면 사람은 무의식으로 길들여지고 자기도 모르게 그걸 끄집어내서 행동으로 보여 준다는걸 알 수 있어요.
일전 정선행님이 보내 온 편지에도그렇게 써 있더만.
인사동 갔다가 문든 내가 생각나 편지지를 보게 되더라고.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이런 편지 받으면 기분은 짜개지요/
태풍이 지나고 난 자리에는 붉게 익은 자두가 낭자히 낙하를 하고, 그걸 바라보는 고서방은 혀를 끌끌 차네. 매번 이맘 때 겪는 속쓰림이지만 어떻게 손을 쓰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쉬운듯 몇 개를 주워 깨물어 먹어보지만 맛도 없기는.
그래서 두어입 베어 먹다가 밭둑가로 휙 집어 던지는데.
장마 끝나고 본격 여름이면 그야말로 햇살에 잘 익은 흐므사란 품종의 자두가 나오는데 그게 맛은 젤루 낫지요. 맛 없은따나 따서 팔라믄 날씨가 달랑달랑 들어조야 하는데 아직도 여긴 비가 내립니다.
내 사는 집이 황간역에서 얼마 멀지 않아.
종일 기차가 서고, 달리고, 출발하는 신호음이 들리는데, 마음이 깔끔하고 이쁜 날은 그런 시호들이 가슴에 들어오지 않는데 이즘같이 개떡같은 칙칙함이 계속 되면 나는 기차바퀴의 마찰음에도 가슴 한 켠이 베인다네. 칼로 한 구석 도려내는 것 같아.
매번 하는 넋두리지만 나이 들 수록 왜이리 심사가 쪼잔해지는지 모르겠어.
아주 머리를 쥐뜯고 싶도록 부아가 치미는걸 가라앉히질 못하네. 예전같으면 가볍게 털고 말았을 일들을...이것이 늙어가는 징조라면 아! 끔찍하이.
안녕.
2004. 7. 5. 상순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