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LETHE'
1.
대구 바닥 동성로길을 조금 비켜나 그러니까 대구백화점에서 옛날 옛날 시립도서관 가는 방향으로 조금 가다가 동인호텔 쪽으로 대가리를 틀어서 좀 올라가다보면, 다방 Lethe가 있었다 팔십년대 일이다.
뭣이든 눈만 뜨면 반짝반짝 들어오던 엽기발랄하던
이십대에 부지런히 드나들던 다방 '레테'
묵지룩한 목재장식과 사이사이에 걸려있던 그림들
창호지로 갓을 씌운 전등의 흐리고 어두운 촉광 사이로
무릎 높이의 탁자가 적잖이 불편했던 그 집에 들락거렸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서글프게 삐그덕 거려
어깨에 을러맨 내 낡은 가방의 끈과 고리사이에서 내는
마찰음과 절묘하게 화음을 이뤄서 은근히 그 계단을
오를 때에는 가방을 한번 추스려 매는 버릇까지 생기게 했던.
이층인가? 일층인가 어느 벽면에 진품 이중섭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해서, 과연 그 그림이 어디에 있을까
또래의 친구들과 수다 중에도 벽을 향해 무수 까재미 눈길
을 보내었던 곳. 그 다방이 레테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기를 쳤는지 다 알수는
없지만, 간혹 눈 감고 시절을 돌려보면 레테의 풍경이
아슴프레 떠 오르는 것이다. 그러다 거기서 멀대같은
총각에게 어떤 이야기를 침튀기며 했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 총각의 얼굴이 묘하게 슬픈 표정을
비틀며 지나가던 것 까지도.
다방 '레테'를 드나들며 세월을 잊고자 했던 일들이
십수년이 지나도 흐득흐득 아카시아 꽃잎이 지는 것처럼
눈 앞에 떨어지니, 떨어지는 꽃잎은 아름다운가?
2.
바깥 풍경을 한번 본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속으로 다시 들어와도 그 바깥 풍경을 잊지 못한다
몸썰나는 몸살만 심해질 뿐이다
하물며 그 바깥 세상에서 새 옷 한벌 가봉해 놓은 상태라면
후후후후... 그 새 옷의 완성을 위해 기를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또 생활이란 만만찮은 괴물은 그 모든 바깥 풍경을
잊으라 하네, 잊으라 하네, 잊으라 하네.
존말할 때, 잊,으,라,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