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4. 7. 8. 08:46
날궂이



비 오는 날에 해필이면
이불 빨래를 하고
시엄니 방에 패드 한 장,
좁아 터진 내방에도 한 장
그렇게 날라래미 깔아놓고 말린다
방바닥에 물이 질질 흐른다
설렁 바람에 내어만 놓아도 지절로 마르는 날은
생각도 안나던 이불이
하필 오늘 같은날 생각날게 모야
그라고 미쳤지 그걸 물에다 텀벙 담그기까지 하다니



뭐할라꼬 전분풀을 끓여서
레이스 저고리에 풀까지 먹였던고
빳빳하게 날이 선
그 가슬가슬한 추억이
다림질에 발딱 일어날까?
열심히 다림질 한 판,
볕 좋은 날은 탱자탱자 놀아데끼다가
이 무슨 날궂이여 전기세 들게



그새를 못참고 고스방이 점심을 먹으러 왔다
마른 날에 치워달라는 담벼락 모래
빗물에 다 떠내려간다고
쏟아지는 이 비 맞으면서 치운다꼬 날 보고 우산들고 있으란다
농사꾼 집구석에 삽이란 놈은 다 어데로 갔는지
낡은 부삽 하나, 자루 한귀퉁이는 날라간 채
돼지막 구석에 있다, 이거라도 갖고 가 보쏘!
일순 일그러지는 양미간을 본체만체 우산들고 따라나가니
아침에 갈아 입은 옷 등때기에 왕방울만한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씩씩, 헉헉거리며 모래 담벼락에 바짝 붙여 퍼 올려놓고
밥 한 그릇 뚝딱 먹는다
이 무슨 날궂이여

그 앙칼지게 볕 좋고, 안 가는 구석 없게 어루만지던
바람 일어 존 날은 다 우짜고...청승이여


기분인따나 뽀송뽀송하게 호박 부침개가 꾸버묵자
일전에 담궈 놓은 산딸기 술이 어지간히 우러났나 들다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