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골목
황금횃대
2004. 7. 8. 08:47
-빠꼼살이-
아랫녁에는 소꼽놀이를 빠꼼살이라 했지
사기그릇 깨진 것을 주둥아리 빼족한 돌맹이로 돌려가며
사금파리를 콕콕 쪼아서 동그란 접시를 만들었다
간혹 은테가 둘러진 부분이 걸리면
그 사금파리 접시 밑둥에도 은테가 선명하게 박혀
골목길 비좁을 틈을 파고든 파리한 태양이
은테 위에서 잠깐씩 빛났다
검은 화장품 유리병은 물김치 독으로 쓰여
갓 올라온 풀들의 생기를 썰어 나박김치도 담구었지
붉은 화분 깨어진 것을 보면 주머니에 넣어와
곱게 빻아 고춧가루로 쓰던 시절
그 눈물겹게 아름다운 빠꼼살이의 버릇이
지금껏 남아 우리는
고춧가루를 준비하고, 마늘을 미리 사놓고
아직도 나박김치를 담근다
-사방치기-
올케바닥 놀이라고 했다
가랑잎같이 타박타박 걸어서
신암아파트 철길아래까지 돌멩이를 주으러 갔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납작하고 한쪽 모서리가 반듯하여
금 위에 늠름하게 서 있어줄
돌멩이를 몇개씩 주워와
동네 버드나무 아래, 혹은 아카시아 밑둥치 밑에
작은 굴을 파고 묻어 두었다
저장 무처럼
돌멩이는 겨울을 견디고
수채구멍을 지난 구정물들이 몸을 풀어 녹을 즈음
골목에 우리는 금을 긋고 돌멩이 놀이를 하였지
단계 단계 밟아 올라갈 수록
돌멩이의 기상은 빛났고
어떤 보물보다 자랑스러운 돌멩이는
내 발끝 위에 올라도 앉았다가
발톱이 아프도록 차고도 다니다가
저녁이면 버드나무 둥지로 돌아갔다
으례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고만 놀고 들어와 밥 무그라"
골목은 그 때서야 휘장을 내리고 어두워진다
-그릇장사 딸-
아버지가 엄마와 결혼을 하고 대구로 나와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다가 범어동으로 이사를 왔다
팔달교 아래서 은모래 바닥에 앉아 병주둥이로 피리떼를
잡는다며 엄마가 빨래하던 풍경을 기억하는 시간은
내가 네살때의 일이다
며칠전, 아니,서너시간 전의 일도 까마득히 잊어 먹으면서
네살때의 기억을 아직도 생생이 기억하는 것은 놀랍다
나는 그게 꿈에서의 풍경인지 아니면 정말로 네살때 내가 체험한
기억인지 아물아물하지만, 그 송사리떼를 향해 병주둥이를 들이대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거 보면 필경 꿈은 아니리라
사진관 마그네슘이 펑 터지면서 순간 깜깜한 눈앞에
영원히 기억되는 사진 한 장이 박히듯이
그 기억은 그런 것이다
천하에 비빌 언덕 없었던 가난한 아버지가
범어동에 이사와서 하신 일은
구르마에 양은그릇을 싣고 다니며 동네방네 팔러 다니시던 일이다
양은 솥, 냄비, 스텐 그릇과 숟가락.....둥그런 밥상, 조리며 꽃솥들이
차례차례 크기대로 포개져서 꽃상여처럼 리어카에 둥개둥개 구름처럼 올라
앉았다
그 밑에는 구멍난 냄비, 뚫어진 솥들이, 찌그러진 세수대야가..수명 다한 울음을 울며 아버지가 다니시던 골목골목마다 종소리를 내며 굴러 다녔다
어둑어둑 해그름에 아버지가 오시면
멀리서 "순아~"부르는 소리
우리는 쪼르르 제비새끼처럼 달려나가
"아부지 다녀오세요"하고 인사하고는 리어카 뒤로 돌아가
아버지의 짐들을 밀었다
고사리손을 겨우 벗어난 손으로
제키에 맞는 아버지의 물건에 손을 갖다대고
힘껏 리어카를 밀었다
아버지는 그때 무슨 생각하셨을까
나는 왜 한번도 아버지께
"그 때 무슨 생각하셨어요"하고 물어 보지 못했던가
그냥, 아부지와 자슥들은 그렇게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세월을 잡아 당겼다
골목이 비좁도록 아버지의 삶은 팍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