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오디와 풍경 하나

황금횃대 2004. 7. 8. 08:51

마음에 박은 사람이 있으면


가시덤불도 무섭지 않나본다


이맘때 오디가 익는다


하얀오디가 빨갛게 변했다가


금방 검디검은 오디가 된다


그 오디를 따다가 술을 담궈


석달 열흘 지나면 우러난 검은 술을


그와 한 잔 나누어야겠다 맘먹고


오디를 따러 갔다


개망초꽃이 키높이로 자라


호랭이 새깽이치고 드러 누워 살림 채리도 되겠다


그 개망초꽃 숲을 지나


개울가 뽕나무 앞으로 헤집고 간다

 



제작년 여름에는

 
콩밭을 메다가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


원두막 위로 기 올라가서


혼자 흘러 내리는 빗물을 수건으로 닦으며


산뽕 잎에 소낵비 들이치는 소릴 들었는데


산 우에서 바람이란 바람은 죄 몰려와


산발한 뽕나무 잎들을 흔들어대며


빗방울 들이치는 소리는 장관이다


그런 소란스런 빗소리에도


산 속의 풍경은 이상시리 고요하여


세운 무릎 사이에 대가리 쳐박고


다 떨어진 원두막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놓으면


세상의 풍경은 영화가 되고

 
나는 어데 세상 한 구석에 저절로 똑 떨어진


한마리 짐승이 된다

 



빗줄기 사이싸이에 서캐처럼 숨어 있는


그리움을 뜯어 먹고 사는


한마리 짐승!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