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메뚜기 -인연의 상극(相剋)

황금횃대 2006. 10. 11. 22:41

  아침먹고 퍼뜩 설거지하고는 오늘도 메뚜기 잡으러 갔어요

해 나오기 전이라 벼잎에는 이슬이 가득 내렸어요

벼잎사구 끝에 메뚜기가 숨었다가 후다닥 뛰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에서 건너 뛰기를 하는 메뚜기들의 바쁜 움직임이 보여요.

두 마리 붙어 있는거 잡았다 놓치면 디게 아깝고 속상해요.

메뚜기가 사라지고 난 뒤의 출렁이는 벼이삭을 노려보지요

출렁임은 잠깐, 허무하게도 두 마리의 메뚜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입 안에 쓴 맛이 돌아요. 그러나

또 눈을 돌려보면 벼잎사구처럼 등때기 날개색이 바랜 암메뚜기가 보입니다.

나는 금새 긴장의 목덜미를 곧추세우고 두 손바닥으로 메뚜기를 생포하려고 몸을 돌려요.

벼이삭 부딪는 소리가 나고 뒷다리를 세우고 빠져 나가기 위해 더듬이를 움직이는 메뚜기를

손바닥 속에서 논가락으로 끄집어내서는 생수통으로 집어 넣어요.

새 친구가 왔다고 좋아서 그러는건지

저희들 있는 곳도 비좁아 죽겠는데 또 왠놈이 들어오느냐며 아우성인지

PET통 속에먼저 들어가 있는 메뚜기가 한꺼번에 일제히 날뛰요.

날뛰는 생수통을 옆구리에 낑가넣고는 다음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처럼

재빠르게 벼이삭으로 눙깔을 돌려 예리하게 훑어봐요.

메뚜기와 한 두시간 같이 뛰어 다니다보면 허기가 집니다.

어쩌다 메뚜기가 나를 먼저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메뚜기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벼잎사구 뒤로 살곰살곰 숨어요

아! 햇살이 통과하는 얇은 벼잎 뒤로 메뚜기다리가 움직이는게 다 보입니다.

생물, 그러니까 살기 위한 본능으로 눈을 가진 것들이 서로 눈이 마주치면, 그것이 참

힘 없는 곤충일지라도 머리속은 잠깐 1회 회전을 하게 되여 있습니다.

'니도 살라꼬 이 세상에 나왔고, 나도 이 세상 살라꼬 나왔는데 니하고 내하고 오늘 이 아침은 무슨 상극의 인연으로 만나 너는 죽음의 통 속으로 밀어 넣어지는고....'

 

뒷뜸에 사는 쌍둥이집 아줌마가 밤 10시에 가면 많이 잡을 수 있다고 밤에 같이 가자고 하던데

대답은 해 놓고서 나는 고만 <인연의 상극>이란 철학적 상념에 발목이 붙잡혀....10시 41분이 깜박

넘어가네요

 

 

 

 

 

<영동 아자씨가 찍은 한가위때의 달과 달빛 넘치는 나락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