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2006년 마지막 날에 부쳐

황금횃대 2006. 12. 31. 21:10

오늘이 양력으로는 섣달 그믐이네

작년 이맘때 일기장에 이름 쓰는 것으로 새해를 열었는데 오늘 밤에는 일기장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았구만

일년을 가마히 되돌아 보면 기억나는 일 보다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아

물처럼 공기처럼 살라고 용을 썼다..이렇게 말하면 여기저기서 뻥치지 말라고 돌멩이 날아 올거구

그려, 나 요령 피우며 잔대가리 굴리며 뺀질이처럼 살았어..어쩌것어 이려면 면죄부가 주어질라는가

오 하느님 귀한 면제부 고맙심더.

 

전반기에는 설렁설렁 포도농사 짓어가며 시절 좋았재

딸래미 아프고부터는 영 살림에 쪼다리가 든거 같어

고서방 다리 다쳐서 두 달 집에 있을 때 아주 깝깝해서 중는줄 알았네

그래도 참...얼마나 좋은가. 모든 것은 다 지나가니.

그게 지나가지도 않고 고여서 푹푹 썩어내려앉으면 정말 돌아버릴낀데

다행이 파도를 치던 잔잔하던 여하튼간에 흘러서 지나가 준다는 것.

 

동네일도 오늘 총회를 하고는 마무리를 지었고, 우친계며 부녀회 결산이면 솥 밑구녕에 불 땐 김에 다

해치웠네. 동네 어른들이 부녀회장하고 총무 보니라고 애 많이 묵었다 하며 어깨 두드리줄 땐 기분

데낄이라. 고래만 칭찬에 춤 추는기 아이고 마산리 공식 곰탱이 상순이도 칭찬에는 약하다는거.

 

입 밖에 내어 말하기는 좀 거시기 하지만, 고스방하고 사랑을 하여도 코피 쏟을만큼 하지 않았고

애인하고 밥 한 그릇 먹어도 배탈 안 날만큼만 먹었으니, 이 촌여편네의 경영이 여간 이쁘지 않나?

두루두루 우표 백이십장쯤 샛바닥에 침발라 부칠 만큼 편지도 오지랖 넓게 보냈고, 이 여인을 어여삐 여기사 먼데,가까운 데를 가리지 않고 찾아 오신 분들과 올뱅이국도 뜨겁게 먹었으니 이만하며 삶의 중간 지점에서 외롭지 않고 몹시 뜨거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지를.

 

이제 해가 바뀌면 나는 마흔 다섯이 되네

생각만 해도 마흔 다섯의 나이는 흐믓한 웃음이 지어지는 나이

어데 중용의 길을 낙하도 부양(浮揚)도 없이, 혼곤히 맑은 날, 쏘아 놓은 살처럼 날아가는 때가 마흔 다섯인거 같어. 그러니 내년에 대한 기대가 만땅이여.

자자, 내가 마흔 다섯이 되어 부처님의 미소같은 평온을 획득할 즈음 고서방은 어떻게 되냐

누구 말마따나 5학년이라는 새로운 세대으로 들어간다 말시

부지런히 주워듣기로 나이 오십이 되면  다큐채널을 즐겨 보는 나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더만, 고스방은 영 그럴 기미는 아니보일터이고 여전히 드라마를 열심히 보겠지. 그래도 요새는 녹화해 놓으라고 다그치지 않으니 그만해도 우린 숨통이 트이네. 그러니까 고스방도 늙은게야. 아니면 그도 가슴 아랫께에 부처님 마음 한 토막 들어 앉힌 것인지도 모를일이고.

 

하루종일 문자가 온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라는 기원이다.

암...그래야지

건강하고 복도 많이 맹글어 나누고, 차카게 살아야지

그동안 너무 잔머리 굴리며 살았재.

머리 쇠는거 보면 알쪼잖여.

 

이제 세시간만 지나면 새해라네

고스방은 또 내 옆구리쪽에 자리 잡고 앉아 제야의 종소리를 같이 듣자고 작년처럼 그럴거구 나는 종소리 들으며 맥주 한 사발 들이켰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겠지

 

아흐..새해!!

살아도 살아도 새로운 그 놀이에 흠뻑 빠져 볼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