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마지막 공간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

황금횃대 2004. 8. 12. 23:17
사이버세상에서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별 사깃군깉은 자식을 만나는가 하면 즐겁고 유쾌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치열하게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절간 풍경처럼 고즈넉한 사람도 만나게된다.
접하는 사이트의 특성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여기 쥔장처럼 경매전문가를 만나기도 하지만
가끔은 전투적인 곳도 들러서 노동자의 삶과 노동 운동을 하는 투쟁가를 만나기도 한다
모두다 직접 내 발품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사이버란 공간에서 서로의 것들을 내어놓으며 만나는 인연인게다.

며칠전 <작은책> 송병섭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은책은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를 모토로 하는 노동자 글쓰기 모임도 하고 책도 다달이 발간을 하는 곳이다.
나는 몇년전부터 그 책을 정기 구독하였다. 첨에는 참 열심히 책을 보았는데 이즈음 책보는 일이 좀 소홀하다. 그래도 책을 손에 잡고 펼치면 어지간히 읽어 낸 다음에야 책을 손에서 뗀다

전화의 내용인즉, 7월 16일부터 18일까지 폐교가 된 천덕초등학교에서 노동자 문학캠프가 열린다고...사이트의 게시판 글에서만 봤는데 마침 내 사는 곳과 천덕은 멀지 않으니 시간이 나면 캠프에 놀러 오라고 부러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았을 때야 꼭 가겠노라 대답을 해 놓았는데, 캠프가 시작되는 이틀동안 비가 어찌나 내렸는지 이틀동안 자두밭이며 논둑이며 그거 보수작업하느라고 비를 홈빡 맞으며 이리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결국 캠프가 끝나는 일요일에 겨우 그곳에 전화를 넣어 볼 수가 있었다

버스기사일을 하며 편집장을 맡아보는 안건모씨는 꼭 보고 싶었는데 그만 일 때문에 일찍 상경을 하였다 하여 남은 기획팀 소속 사람들이 서울 올라갈라면 반드시 황간 나들목으로 갈 수 밖에 없으니 서울 가는 길에 꼭 나에게 연락을 하라 이르고 자두를 한 상자 따놓고 기다렸다
그들이 서울 가는 길에 실어 보내면 작은책 식구들이랑 나눠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못 본 서운함을 그렇게라도 갚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물한리 들렀다 간다는 얘기가 있어 기다리니 아홉시가 조금 덜 되서 연락이 왔다.
황간나들목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두를 오토바이에 싣고 장소로 가니 송병섭씨와 삶이보이는 창의 송경동씨..그리고 작은책의 안미선씨 이렇게 세 사람이 나왔다.
다들 술을 한 잔씩 해서 오늘 서울 못가고 내일 새벽에 가기로 했다면서 변변찮은 촌구석 다방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송경동씨의 시를 읽거나 글을 읽으면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척박하고 기가 막힌지 숨이 턱턱 막히는데 그렇게 글을 써내는 실력들이 다들 만만찮아 사람의 심정을 울리고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시간쯤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안미선씨는 조용조용한 성품의 여자였는데 결혼의 여부는 알 수가 없고 또한 물어 보지도 않았다. 그이도 여성의 편에 서서 미혼모의 생활 단편을 써 놓은 글을 잃었는데 치우치지않는 글쓰기를 하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였다.

근데...이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이야기고, 거기 작은책에서 몇 년전에 알게된 아저씨, 사당역 근방에서 족발노점상을 하시는 분이다.
디카로 집에서 키우는 선인장의 자태를 찍어서 자주 우리에게 보여주곤하였는데 이즈음 뜸하였다. 포도 딸 때면 포도주 맛나게 담어놔라고 전화를 하고, 땡볕에 한 참 일하고 있으면 좀 쉬었다 하라고 전화를 걸어 주신다.
길에서 같이 노점상 하는 사람들과 투쟁도 하고 권익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시는데 그 분이 책을 보내왔다.

제목이 이거다

마지막 공간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


더워서 그 동안 책 읽을 엄두도 못 내다가 어제부터 책을 들었는데 청계천 노점상 사람들의 인터뷰내용을 그대로 옮겨서 책으로 묶은 것이다.
아직 다 읽어 보진 않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제 삶의 무게를 져내며 남에게 피해를 안 끼치며 목숨조차 청계천에서 거두길 희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끔 나는 내가 얼마나 포시랍게 생을 사는지 모르고 투정을 부릴 때가 있다
씩잖은 연애에 애닯아 하고, 통장의 잔고가 조금 헐빈하면 불안해 하는 못된 병도 가지고 있다
그런걸 살면서 깊이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이기가 쉽지 않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번 선뜩한 칼날 위에 내 삶을 얹어 보는 것이다.

마루에 누워 책을 읽는데, 티비에서는 딸 셋을 놓고 시어머니의 구박에 야반도주를 한 어떤 한 많은 어머니가 나와서 애타게 딸이 보고 싶다고 딸에게 미안하다고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얘길한다. 아..사는 것이 왜이래..나는 고만 눈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 빨래 걷어 개어 놓은 곳에서 수건을 찾아 눈꺼풀이 시뻘개지도록 빡빡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마침 책 내용은 다방을 하는 장군지 아줌마가 딸 하나를 악착같이 지키며 쪽방에서 이십년을 살아온 이야기를 읽는다.
어린 딸 셋을 버리고 간 그 아줌마나, 딸 하나 지키기 위해 평생을 높은 목소리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장군지 아줌마나 다들 불행하고 힘겨운 이 땅의 딸들 이야기다.
자기가 사는 곳이 무덤같다는.. 그 한 마디 말에 나는 가슴이 천근으로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