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7. 1. 18. 00:34

12시가 넘어 오늘이 그야말로 오늘이 되얐네

핸드폰을 열어보니 오늘이 음력으로 동짓달 그믐이여.

동천이란 시가 있지요.

 

 

동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짓달 그믐밤에는 달도 없어서

쨍허니 추웠으면 이 밤이 더욱 단단할 터인데

고스방은 상가집에가서 여직 오들 않았네

올해 우리가 상포계 유사여

그래서 초상이 나면 사흘을 꼬박 지켜야하는데 낮에는 갈 수 없고 밤에만 가지를

요즘은 시골도 인심이 많이 달라져서

그 너른 마당 놓아두고 장례식장으로 숨 떨어지면 옮기는게 유행이라네

이꼴저꼴 신경 안 쓰고 그냥 식당에서 치르고 만다는거지

날이 새면 발인하고 노근네 아주마이 늙은신랑은

굴신도 못하고 들어 앉은지 몇 년만에

천년만년 지낼 유택으로 간다네.

 

조금전에 잠깐 자다가 나쁜 꿈을 꾸었재요

뜬금없이 고스방이 범인을 잡으로 간다고 내 손을 뿌리치고 가더니만

총에 맞아 집으로 들어 온 거라. 이런 꿈은 어떻게 풀이를 해야하는지.

잠에서 깜박 깨니가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이여. 어찌나 두방망이질을 해대는지

다시 베개를 끌어안고 잠을 청해도 머리 속이 하얗게 맑아오는겨

베개 끌어 안고 아이들 방으로 건너 온다네

 

섣달 초 여샛날은 매곡 작은집 할머니 제사여

옛날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제사를 지내러 고서방이 가면

그들을 기다리며 이런 글도 썼었재.

 

휘영청,

한껏 부풀었다 옆구리가 이틀 기운 달빛을 밟으며 스방과 아들은 제사를 지내러 갔다.

꼭두새벽,

첫 닭 울기 전 향을 피우고 새쌀을 씻어 묏밥을 짓고, 상념없는 절을 올리며 의식이 진행된다. 달은 그 순간에도 천리씩 제 발걸음을 떼어 놓다.

 

 

길가의 나무들이 벗은 그림자를 일렁이며 푸른 물길을 제 몸으로 내는 동안

별들은 가지 끝에 앉아 수만의 밀어를 속삭였으리라. "어찌 아는가" 하고

물으면 "그걸 왜 모르는가"로 대답해 주어도 두 사람 사이엔 아모 충돌이 없으리라.

 

 

봉지에 조상이 먼저 음복한 음식을 싸서 들고 군청색 정맥이 밤하늘에

신경망처럼 산개한 길을 되짚어온다.

담요에 돌돌  말아 데리고 제사를 지내러 다녔던 어린 아들놈은 이제 앞서거니

뒷서거니 에비의 어깨를 부딪치며 박꽃같이 웃는다.

 

 

어머낫, 어머낫, 이러지 마세요. 더 이상 내게 이러시면 안되요

아빠처럼 제 고추에도 털이 났단 말이예요. 아비가 들이미는 손짓에

제것을 손으로 막으며 잽싸게 피할 만큼 어린 자식은 몸이 크고, 생각이 크고.

 

 

아비는 문득 민망타가도 헛,헛, 웃음이 난다

자신의 앞머리칼이 쇠어가고 어쩌다 무릎 관절이 어긋나는 발걸음이 잦아져도 저것들, 저 알맹이들이 알록달록 자라니 속상함도 잊고 심중에 드는 바람도 너끈 견뎌낼 수 있다. 나는 껍데기로 비어가도 자슥놈들이 댕글댕글 알맹이로 영글어주지 않는가.

 

 

대문을 밀치니 앉아 있던 황소가 화들짝 앞무릎을 펴며 일어난다. 달빛은 오래된 콘크리트 바닥을 맑은 물처럼 환하게 비추인다. 느릅나무 그림자가 아랫채 마루 바닥에 드러 눕고, 늙은 돌감나무 가지가 그 위에 엉기였다. 오래된 이 집.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낮고 아늑한 초가집에서 숨결을 거두었고,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내 아버지....숨결이 이어지는 천장에는 숱한 사연도 한약방 약봉지처럼 매달려 있으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환하게 보이는 그 집의 역사 혹은 내력.

 

 

아들놈은 봉지를 부엌 쪽창 턱에다 올려놓고 방으로 사라진다.

묻어온 정월 칼바람이 벗어 놓은 외투에서 톡, 떨어져 나온다.

 

 

그렇게 아비 손을 잡고 달랑 거리며 제사를 지내고 오던 아덜놈은 이제 제 애비보다 키가 더 커서 이젠 아비의 손을 잡지도 않을테지

낮에도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가도 핸드폰을 사줄 수 없다는 말을 하자 아덜놈은 식식거리며 서운해하고 나는 무슨 뒷돈이라도 꿍쳐 놓은 듯 녀석에서 마음 상해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사는 것은 점점 팍팍해지는데 욕구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지니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꼬

이런저런 생각에 밤은 깊어가고 나는 자꾸 눈을 껌벅거리는데.

 

고스방은 아직도 오지않는다

오면 등때기에다 소금도 뿌려줘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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