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한 조각
점심에는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렸다
생일은 지났으니 말 할 것 없고
맨날 보온밥통에 있는 식은밥만 먹다가
오늘은 부러 쌀을 불려 냄비밥을 했다
밥이 되고 있는 사이에 배추를 삶아 무치고
호두를 튀겨서 고추장강정을 만들고
계란찜을 따끈하게 해서 첫 숟갈 자욱을 내가 내었다
옴팡 뜨거운 계란찜이 떠져나온 흔적이 보시기에 생긴다
맨날 밥상 여러번 차리는게 몸서리가 나서
내 배가 고파도 밥상 한 번 덜 차릴려고 몸부림치다보니
아모 식구라도 들어오면 상 차릴때 같이 먹는다고
고파도 참고, 불러도 먹었던 것이다.
열두시 반점을 지날 때
아무도 점심 먹으러 들어오지 않았지만
금방 만든 반찬들을 상 우에 늘어 놓고는
주발에 방금 한 뜨끈한 밥까지 김이 몽실몽실나게 퍼서
혼자 앉아 먹는다
먹다가 물 뜨러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먹다가 모자라는 반찬 보충하지 않아도 되고
참말로 오랜만에 나만을 위한 밥상을 내게 차려주었다
맛있게 먹고는 냉장고 식단판에다 방금 먹은 반찬 목록을 적어 둔다
대략 이렇게 일년 동안 해 먹는걸 써서 모아 두었다가
울 딸래미 시집갈 때 넣어주어야지
문득 밥상에 뭘 준비해야할지 아득해질 때가 있잖여
그럼 엄마가 매일매일의 필체로 기록된 식단표를 보고
다문 몇 가지라도 준비한다면 숨통이 트이잖여.
두번째 조각
어머님이 입맛이 똑 떨어지셨나보다
"무얼 먹어도 쓰다"하신다
저녁에는 잔치국수를 먹으면 입맛이 좀 돌아올려나하신다
엉겹결에 멸치다시물 끓여 고기고명과 계란지단만 얹어서 낸다
메밀묵을 고스방이 떨어지지 않게 사다대어도
그걸 드시지 않는다
옛날 옛날에
메밀묵이 먹고 싶어 친정에 갔다가 둘째아들, 그러니까 대구 아즈버님을 낳았다
아기를 낳고 며칠 되지 않아 동네 초상이 났는데
둘째아들을 어머님이 딸 서이를 낳고 얻은 아들이라
초상나면 아이에게 부정일 탈까바 어머님 시어머님이 소식을 듣고는 집으로 데려온다고
정월지나 이월에 낳은 아기를 할머니는 치마폭에 폭 싸서 안고 오고
어머님은 한 칠일도 채 못되어 그 바람을 맞으며 이십리길을 걸어 오셨다
지금 어머님이 몸이 저렇게까지 망가진 것도
그 때 산후조리를 못해서 그리된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메밀묵
츠자적에는 입이 삐 돌아가도 밥 안먹고 메밀묵만 있으면 그것만 먹었다는데
그 메밀묵이 맛이 없어 안드신다 아이고 큰일이다.
아버님 입맛 없을 땐 어머님이 갖은 것을 다 해다바치는데
어머님 안 드시면 아버님 차있겠다 나가셔서 맛난것 좀 사드리면 좀좋아?
몰라서 못하는건지...돈이 아까와 못하시는건지 분간이 안된다
세번째 조각
대구 친정에 전화하니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신다
옆에서 가희 우는 소리가 듣긴다
"아버지 가희가 왜 울어요?"
"머리 감겨주고 목욕시켰더니 저렇게 운다"
엄마가 전화를 바꿔 받으시더니
"아이고 씻기는데 왜 저렇게 우는지 모르겠네. 느그들은 젊으니까 달갤라는가 몰라도
나는 많이 울어야 노래 잘 부른다고 더 씨게 울어라 울어라 한다"
엄마는 늘 그렇게 하신다
아이가 울어도 그걸 재미있어하며 자꾸 울어라..노래 잘 부르구로..하신다
그럼 우는 놈은 약이 올라서 더 빠락빠락 고함을 지른다.
"가희 좀 바꿔 주세요 아버지"
"가희야 고모다"
"엉엉 흑흑...고모..."
고 조고만 것이 고모 목소리를 듣더니 더욱 섧게 운다
마치 호된 구박이라도 받다가 제 에미 목소리를 들은 양..
아주 목을 놓아 운다
아버지가 전화를 다시 받으시더니 나중에 통화하자 하신다
전화끊고 내가 짠해서...자꾸 다시 데려올까..한다
그러나 그것도 쉽잖은 일이다.
네번째 조각
어제 인터넷으로 병조가 핸드폰을 샀다
세상에나 참 빠르기도 하지
어제 저녁 여섯시쯤 서류를 팩스로 보냈는데
오늘 낮에 핸드폰이 개통되어서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몇날 며칠을 핸드폰 고르느라 모니터에 머리 박고 살던 아들
핸드폰 사면 더이상 들여다 볼 필요가 없으니 공부할거라고
그 말에 속아 사줬더니 핸드폰이 오니 오후 내내 거기에 머리 박고 있다
좋겠지.
엄마의 지갑은 빵구가 나던말던 최신형폰으로 장만했으니
아닌게 아니라 들여다보니 휘황찬란하다
"엄마도 하나 바꾸지 꼬진 폰 가지고 있지말고"
"야 이자슥아 암만 그래도 안 바꿔. 니들은 핸폰으로 비릉빡에 못 박을 수 있어?"
그 말에 아들놈 뒤집어진다
"그려, 엄니 폰 탱크 폰이우"
"까불지마 쨔샤. 여차하면 밀어버릴텨!"
여태 넘이 버리는 폰만 주워서 썼는데 솔직히 이쁘고 광나는거 보니까 나도 새거 하고 싶다
에이씨...견물생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