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자상(刺傷)
"젊었을 직에는 대엿새를 굶어도 이케까지 다리가 후덜거리지는 않았는데 어치게 된 셈인지 한끼 못 먹었다고 이렇게 사람이 힘이 없을까"
어머니는 이즈음 입맛이 딱 떨어지셨다. 그나마 좋아하는 음식은 식구들 다 먹고 난 뒤에 남은 것까지 젓가락으로 하나 하나 꼼꼼하게 집어서 드셨는데 그나마도 이젠 잊은 듯 하다
낮에는 예전에 안골 숲속의 집에서 만든 오리탕을 맛나게 드시길래, 부러 시동생 차를 타고 포장을 해와서 식당 아지매가 시키는대로 고대로 끓여서 드렸는데 그것도 댓숟갈 수저를 담그다 만다.
"옛날에는 이렇게 안 매웠는데 오늘것은 와이래 맵노"
입맛이 없으니 숟갈로 음식 떠 먹기가 겁이 나신게다
결국 그것도 한 마리 다 끓여서 남겨 두다.
옛날 시고모님하고 같이 가서 먹을 때는 뼈에 붙은 오리살을 살뜰하게도 발라 드셨다.
짭쪼름한 국물을 연신 흰 밥 우에 끼얹으면서 음식이 간이 맞으니 맛있네 소리를 열두번도 더 하셨다.
그 입맛이 어디로 간 것일까.
도저 점심 수저를 놓으시고는 다리에 힘이 없으신지 방에 가서 드러 누우신다.
아버님과 같이 점심을 먹다가 내가 "그럼 저녁에는 좀 일찍 영동 넘어가서 칼국수를 사드시지요"
했더니 아버님이 불뚝, "어제 김천 갔을 때 칼국수 먹을랑가 물어보니 안 먹는다 하등만"
하며 아주 마뜩찮은 어조로 얘길하시니 엄니께서 부애도 좀 나셨다.
할마이가 그렇게 식사를 못하면 어데 델고 나가서 나긋나긋 뭣이 입에 맞을까 물어도 보며 그렇게
할마이 생각을 좀 해주시면 좀 좋은가. 기껏 영동 가서 칼국수 한 그릇 사 먹자는 말에도 저래 서운케
대답을 하신다. 방에 드가서 누운 어머님이 부엌까지 들리라는 목소리로 뭐라하신다
"내가 김천에 어느 구석에서 칼국수를 맛있게 하는지 아나? 아무데나 가서 묵다가 맛 없으면 다 묵도 모하는데 그거 젓가락 놓고 남기기도 뭣하고"하며 뭐라하신다.
상을 대충 치워놓고는 안방에 들여다보니,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부애가 나셔서 모로 누워 쌕쌕 부아를 참으시고,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입을 꾸윽 다물고는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누워 계신다.
"그러지 말고 어머님 정 식사를 못하시겠거등 병원에 입원을 하시지예. 그래도 링거액 맞으며 수분이라도 공급하고 신경도 좀 덜 쓰시면 입맛이 돌아올거 아입니꺼"
"됐어 고만. 거기가 있으면 집에 밥하고 병원 살림하고 다 어떻게 한단 말이야"
아버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계신다.
"병원 가느니 차라리 약목 한의원에가서 약이나 좀 지어다 먹어보는게 낫지"
"그럼 그렇게 하세요. 고만 지금 일어나 준비하시고 저랑 아버님 차 타고 약목 가시지예"
내친김에 서둘러 약목 한의원가서 진맥을 하니 기가 약해서 그러시단다.
이제 기가 약하실 연세도 되셨지 올해 여든 다섯이니.
젊은 한의사가 얘기하는데 내 생각과 별반 다를게 없다. 나도 반 의사 다 됐다.
아버님, 어머님 약을 짓고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오는길.
어지간히 추풍령 고개를 다 넘어 올 때 어머님이 말씀을 꺼내신다.
"젊어서는...."
그 때 가마골밭에 보리를 심을 때였는데, 시엄니하고 나하고 보리밭을 맸지. 그런데 어무이가 보리밭을 매면서 대영이 욕을 하고(대영이는 어머님 둘째딸), 또 그러다 서울 동서 욕을 하고 그래. 딸만 낳는다고.
그래서 내가 옆에서 아이 그사람도 뭐 딸만 낳고 싶겠어요. 딸 낳다보면 아들도 낳겠지. 그 말이 떨어져 고물도 묻기전에 어무이가 비호같이 내 머리채를 휘감아 쥐시더니 모지락시럽게 땡겨서 머리카락을 한웅큼이나 뽑아내데. 그러고는 또 달라들어. 옆에 밭에 선자네아부지가 그걸 보고는 뛰어와서 어무이를 말리며 <아이고 할마이 고만 진정하시라구. 나는 싸움이라면 몸써리가 나는 사람이래>하면서 어무이를 뜯어 말렸지. 그렇게 안 말렸으면 내가 엄청 맞았을거라. 선자네아부지가 달개서 어무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네. 혼자 남아서 보리밭에 퍼질고 앉아 얼매나 울었던지.. 아버님 묏둑에 올라가서는 아버님을 부르며 나는 이런 시집살이 살아낼 자신이 없으니 날 데리고 가라고. 목이 꺽꺽 쉬도록 묏등을 뚜두리치면서 울고 있는데 울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이 지나가. 그래서 어이고 또 날 보면 이상하게 여기고 소문이라도 나면 우짜나 싶어서 그래 그치고 내려왔어. 집에 오니 하도 분하고 기가 맥히서 밥이 넘어가야재. 엿새를 굶었네"
어머님은 그 대목에 이르러서 그 때의 분노가 되살아나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까지 보이시며 흐느끼신다. 그러면서도 말씀은 계속하신다.
"처음 부터 시집살이를 얼매나 시키던지 살 자신이 없었어. 춘자 하나 낳고서는 여기서 끝내자 싶어서 밤이 되길 기다려. 기다리는 동안 얼라 손을 만지작만지작하면서 눈물반 울음반 섞인 목소리로 니는 잘 살어라, 잘 살어라. 잘 살어라...하고 얼매든지 춘자 손을 만지고 있다가 밤중에 철둑비얄에 올라섰지
죽을라꼬. 그 땐 이혼이 어딧어. 그냥 친정 어무이 아부지한테 누가 되면 안된다고 죽어도 이집 구신이
돼야 한다고 ..그래서 작정하고 철길에 올라섰는데...아고 무시워라 죽는것도 뭐가 씨이야(씌여야) 죽지 맨정신으로는 못죽어. 죽을라고 올라갔는데도 저기서 기차소리가 나면 몸이 지절로 밑으로 뛰어내려와
몇 번을 그러다가 에고 죽는 것도 맘대로 안 되는구나 하군 집으로 왔재. 지금도 수야엄마는 회관에서 그 때 이야기를 해. 우리집에 뭐 가질러 왔다가 시엄니가 날 장작더미에 밀어넣고 주먹으로 패대는거 보고는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갔다고. 눈퉁백이를 얼마나 아프게 때렸던지 멍이 시퍼렇게 들어각구서는. 그 몰골을 해서 정거장에 나갔더니 막내 시누가 날 보고 <언니 눈이 왜그래>하고 묻기에 차마 엄니가 때려서 그렇다는 말은 못하고 넘어져서 그랬다고. 어이구 나중엔 알았는가 몰라도...내가 참 등신같앴어.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가 몰라."
연신 눈물바람이시다. 아버님은 입을 한 일자로 꽉 다물고는 아모 말씀도 없으시다.
여자들만이 가지는 저 깊은 상처..
이순의 나이에도 되새김질하면 할 수록 짙어지고 새로워지는 저 상처
깊은 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