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그거야 그거!

황금횃대 2007. 3. 16. 20:47

매일 병원이다.

산부인과, 내과, 또 다른 산부인과, 한의원, 종합병원....

 

"에이 씨발녀르꺼 약을 먹으마 좀 낫덩가 아이면 디저든가..."

 

"......"

 

"......"

 

어제 저녁 먹는 밥상에서 어머님이 저렇게 말씀을 하신다

씨락국에 밥 말어서 얼른 퍼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컥 뭣이 가심에 막힌다

아버님은 아모 말씀도 없이 씨락국에 밥을 꾹꾹 말고 계신다.

국대접 바닥에 모로 세워 밥을 헤쳐놓는 은숟갈 닿는 소리가 듣긴다 탁, 탁, 탁,

 

메밀묵 반 사발을 말아서 억지로 드신다

고기고명도 물리치고 김도 얹지 마라고 손사래를 하고, 그러더니 고추장을 달라신다

메밀묵에 고추장.

나는 더 급하게 말아놓은 씨락국을 퍼 넣는다

가슴에 선반이 하나 생겨 내가 삼키는 밥이 그 선반 위에 차곡차곡 얹힌다.

 

밥 숟가락을 놓고는 물 한 모금 부어 넣어 입 안에 머물고 있던 마지막 밥알을 꿀꺽 샘킨다.

 

"그러지 마시고 내일은 병원에 가셔서 링거를 좀 맞으세요 어머님. 식사를 통 못하시니 기운이 없으시잖아요"

입맛없다는 소릴 듣고 내도록 내가 입이 닳도록 끼니 사이마다 해 보는 제안인데 그냥 통과

어머니의 이유를 나는 따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더니 오늘은 영동 내과에 가 보자 하신다

며칠 전 시고모님이 오셔서 옛날 당신도 밥 맛이 없어서 거기 갔더니 입맛나게 하는 주사를 줘서

그거 맞고는 차차 밥을 먹어서 괘안아졌다고.

 

세상에 입맛나게 하는 주사가 있는 줄 나는 듣느니 첨이다.

아침 먹고 어머님 목욕물 받아서 목욕 시켜 드리고 잠시 쉬시라 하고는 나도 퍼뜩 샤워를 한다.

아버님 들어 오시기에 차를 타고 영동 한내과가서 진료를 받고 영양제를 넣은 링거를 한시간 반동안 맞으신다. 그러시는 동안 나를 보고 시장에 가서 닭발을 좀 사오라 하신다.

그거 좀 볶아서 밥하고 먹어보게.

 

냉동된 닭발을 집에 오자마자 녹여서 소주 넣고 푹 삶는다. 홍케이가 되도록 삶는다.

양념을 만들어 어머님 좋아하시는 달달짭쪼름버전으로 볶아서 대파 섞어 잠시 센불에 뒤적거려 통깨 뿌려서 밥 하고 드렸더니..어머낫. 진작에 해 드릴걸...

 

마치 내가 닭발볶음을 해드리지 않아 입맛이 없었던 것처럼 잘 드신다.

저녁에도 그걸로 밥 반 공기를 다 드셨다.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겠다며 한 숟갈 남긴 밥과 닭발 댓개 남은 것을 기어이 날 불러 먹으라고 하신다.

앉아서 어머님 남긴 밥 한 숟가락 닭발과 같이 먹는다. 그래야 좋아하시니까.

 

입맛 없다 하시고 부터는 무엇이든 비벼서 같이 먹자고 하신다.

처음에는 그러지요..했는데 매끼마다 비벼서 어머님 조금 드시고 나머지는 날 먹으라 하니 은근히 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나는 옛날부터 지 밥 지 비벼서 먹자 주의였기 때문에 커다란 양푼에 밥그릇 있는대로 엎어 넣고 공동으로 비벼서 나눠 먹는걸 별루 탐탁찮게 여겼다.

그러데 어쪄? 혼자 비벼서는 맛없다고 안 드시니 엄니 한 숟갈이라도 더 드시게 하라믄 싫어도 같이 먹을 수 밖에.

 

어제 오후에 은행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회관에 잠깐 들러서 동네 아지매들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집에 어머니는 좀 어때? 하며 서울할무이가 물어 보신다. 그만그만 식사를 못하세요 하고 대답했더니 누워있던 민석이 엄마가 일어나서 "상민아, 상민이하고 나하고 누가 빨리 일 치르나 심지뽑기하자"그런다. 어이구.. 울 어머님은 아직은 안 되요. 번호표 받아 놓은 것이라도 물려야하구만.

 

동네 앞 철길 전선에서는 날마다 까마구가 와서 까옥까옥 울어댄다.

나는 무슨 일을 하다가도 문득 창 밖으로 눈을 돌려 까마구 날아간 자리를 더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