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작한 편지 쓰기는 내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이다.
누구든 내가 긁적거린 글을 보고는 습작기가 상당히 오래 됐을거라는 나름의 짐작을 넌즛 내어놓는데, 편지 쓰는 것도 습작으로 보자면 뭐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편지는 고등학교 친구와 졸업 후 주로 썼는데 그녀는 지금 수녀가 되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집안을 꾸려가던 어린 그녀와 직장 생활, 그리고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또래의 책읽기 수준이라던지, 아니면 그녀의 詩作 이런 것들이 또한 심심찮게 이야기가 되고 논의가 되었었다.
스무살을 맞이하고 우리의 생은 얼마나 가파른 상승곡선이였던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생각이라는 여과지를 통과하게 되고, 그 생각여과지란게 자신의 에고와 결합하면서 주도면밀하게 촘촘해 지던 그런 시절이였다. 암울하다는 생각보다는 늘 희망적인 뜻을 세우고 실천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이십대의 중반에는 짬짬히 등장하는 남자친구의 이야기로 마치 지하조직의 비밀결사처럼 우린 비밀이 많아졌다.
그리고 스무다섯살이 되자 우린 자신의 갈길을 확실하게 정한다. 그녀는 수녀원으로, 나는 결혼으로, 그렇게 도착지가 정해졌다. 스스로 정한 것이기에 실패가 없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매번 세운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나눔을 가졌던 것이다. 격려하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끊임없는 조언을 하였던 것이다.
편지 외에도 우린 교환 노트를 쓰기도 하였는데, 한달이나 두달 쯤 이편에서 쓰면 그 공책을 소포로 저쪽 친구에게 보내고, 또 그녀가 쓴 공책을 내가 다시 받아서 이어서 쓰는 그런 교환노트였다. 로제마르탱뒤가르의 띠보가의 사람들이란 책 중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우린 회색노트가 아닌 갈색노트라 명명된 그 공책에 자신의 온갖것들을 부려놓았고, 부려놓은 글들을 편견없이 바라보았다. 그것이 글쓰기 공부라면 유일한 공부요 훈련이였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적 삶에 천착하는 바가 큰데, 그 좋은 예로 아직도 지필묵 차려놓고 편지 쓰는 일에 몰두를 한다는 것이다.
매달 달력을 그려서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주며 한달의 시간을 반듯한 네모칸 속에 넣어 마치 포장이라도 한 듯 보내주는데 받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한달의 의미를 색다르게 받아 들이는 것이다. 자주 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데 모두 받는다는 기쁨은 한결같은 크기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내 욕심을 조금 내자면 그렇게 보낸 것들이 답장이 되서 되돌아 오면 더욱 금상첨화가 되겠지만, 세상의 사람들이란 늘 내맘 같지 않으니 그저 그려려니 하고 사는 것이다.
딱히 욕심을 낼 것도 없고, 그 편지들은 내 손에서 떠나면 그저 그뿐.
오늘도 보리짚 갈아 섞어서 만든 한지 위에다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쓴다.
정선 오지로 가는 편지도 있고, 용인으로, 청주 웨기스 산장 주인 아지매한테 가는 것도 있다
쓰다보면 저절로 그 사람이 생각이 나고, 그러면 그들은 곧바로 내 옆에 앉아 조근조근 이야기 하는 형국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데 편지만한 것이 또 있으랴.
이즈음 메일이 있어 우린 쉽게 소식을 전하고, 답장도 편리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메일에 우린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을까.
편지 겉봉에 주소를 쓰고, 우편번호를 찾아서 여섯개의 네모 안에 숫자를 써 넣고, 이즈음 보통우편 요금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쓰여진 우표를 붙여 붉은 우체통 속에 던져넣어 보라. 심심 골때리는 우리의 생은 포카칩 과자 공기빵빵 봉지처럼 무수 의미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누구든 내가 긁적거린 글을 보고는 습작기가 상당히 오래 됐을거라는 나름의 짐작을 넌즛 내어놓는데, 편지 쓰는 것도 습작으로 보자면 뭐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편지는 고등학교 친구와 졸업 후 주로 썼는데 그녀는 지금 수녀가 되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집안을 꾸려가던 어린 그녀와 직장 생활, 그리고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또래의 책읽기 수준이라던지, 아니면 그녀의 詩作 이런 것들이 또한 심심찮게 이야기가 되고 논의가 되었었다.
스무살을 맞이하고 우리의 생은 얼마나 가파른 상승곡선이였던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생각이라는 여과지를 통과하게 되고, 그 생각여과지란게 자신의 에고와 결합하면서 주도면밀하게 촘촘해 지던 그런 시절이였다. 암울하다는 생각보다는 늘 희망적인 뜻을 세우고 실천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이십대의 중반에는 짬짬히 등장하는 남자친구의 이야기로 마치 지하조직의 비밀결사처럼 우린 비밀이 많아졌다.
그리고 스무다섯살이 되자 우린 자신의 갈길을 확실하게 정한다. 그녀는 수녀원으로, 나는 결혼으로, 그렇게 도착지가 정해졌다. 스스로 정한 것이기에 실패가 없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매번 세운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나눔을 가졌던 것이다. 격려하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끊임없는 조언을 하였던 것이다.
편지 외에도 우린 교환 노트를 쓰기도 하였는데, 한달이나 두달 쯤 이편에서 쓰면 그 공책을 소포로 저쪽 친구에게 보내고, 또 그녀가 쓴 공책을 내가 다시 받아서 이어서 쓰는 그런 교환노트였다. 로제마르탱뒤가르의 띠보가의 사람들이란 책 중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우린 회색노트가 아닌 갈색노트라 명명된 그 공책에 자신의 온갖것들을 부려놓았고, 부려놓은 글들을 편견없이 바라보았다. 그것이 글쓰기 공부라면 유일한 공부요 훈련이였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적 삶에 천착하는 바가 큰데, 그 좋은 예로 아직도 지필묵 차려놓고 편지 쓰는 일에 몰두를 한다는 것이다.
매달 달력을 그려서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주며 한달의 시간을 반듯한 네모칸 속에 넣어 마치 포장이라도 한 듯 보내주는데 받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한달의 의미를 색다르게 받아 들이는 것이다. 자주 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데 모두 받는다는 기쁨은 한결같은 크기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내 욕심을 조금 내자면 그렇게 보낸 것들이 답장이 되서 되돌아 오면 더욱 금상첨화가 되겠지만, 세상의 사람들이란 늘 내맘 같지 않으니 그저 그려려니 하고 사는 것이다.
딱히 욕심을 낼 것도 없고, 그 편지들은 내 손에서 떠나면 그저 그뿐.
오늘도 보리짚 갈아 섞어서 만든 한지 위에다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쓴다.
정선 오지로 가는 편지도 있고, 용인으로, 청주 웨기스 산장 주인 아지매한테 가는 것도 있다
쓰다보면 저절로 그 사람이 생각이 나고, 그러면 그들은 곧바로 내 옆에 앉아 조근조근 이야기 하는 형국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데 편지만한 것이 또 있으랴.
이즈음 메일이 있어 우린 쉽게 소식을 전하고, 답장도 편리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메일에 우린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을까.
편지 겉봉에 주소를 쓰고, 우편번호를 찾아서 여섯개의 네모 안에 숫자를 써 넣고, 이즈음 보통우편 요금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쓰여진 우표를 붙여 붉은 우체통 속에 던져넣어 보라. 심심 골때리는 우리의 생은 포카칩 과자 공기빵빵 봉지처럼 무수 의미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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