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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야기

황금횃대 2008. 2. 27. 16:57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은 이제 곧 대학생이 된다

대학에 가서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고 어떤 꿈을 이뤄나갈 것인가에 대한 계획은 없고 오로지

<무엇을 입을까><어떤 놈을 친구로 만들까><무슨 화장품을 써야 피부에 좋을까>..이런 생각만

머리에 가득차 있다.

딸은 겨우겨우 군소재지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서는 일 학년 한 학기를 겨우 마칠 즈음

남자친구가 생겼다. 이년 반동안 연애만 열라리했다. 아니아니아니 조금씩 공부도 했다.

그러나 골든벨 문제를 풀면 내가 저보다 80%를 더 맞추었다.

그런 나에게 딸은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서 돈을 벌어 오라면서 공부를 하라고 종용했다

우리말 달인인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내가 간간히, 어떨 때는 달인 도전자가 끙끙 앓고 있는

마지막 문제를 내가 우습게 맞추기도 하는 걸 보고는 국어 사전을 사서 달달 외어 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상금을 좀 타 오면 어떨까...하며 은근히 나를 곁눈질해서 보기도 했다. 그러면 그 딸에 그 에비가 아닐까바

옆에서 돈벌기 힘들다고 징징거리던 스방이 한 술 더 떠서 자기가 국어 사전 두꺼운 걸로 사 줄수 있다는 말을

거들었다.

나는 속으로 가만가만 한 번 나가볼까...생각 중이다가도 저 소리를 들으면 괜히 부애가 치솟았다.

상금을 타 오면 모두 벌떼처럼 달라 들어 상금을 분할하자고 소리 칠것 같았다. 특히 스방은

자기가 거금을 들여 국어 사전을 사줬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분명히 상금의 분할비율을 선명하게

제시할거다. 아, 무서워라. 이런 제길..딸 얘길 하다가 삼천포를 샜네.

 

딸은 제 점수에 맞춰 지방 사립대를 지원해서 합격을 했다.

딸의 남자 친구는 공부를 잘 해서 서울 사립대로 가게 되었고, 그 녀석은 어제 짐을 부치고 오늘

여덟시 기차로 서울로 갔다. 딸 아이는 그게 못내 섭섭한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섭섭하면 저도

공부 좀 빡시게 해서 서울 가면 될 것 아닌가. 그런건 접어 두더라도 왜 나한테 신경질을 내냔 말이지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았고, 남동생은 부엌에서 누나 밥 차린다고 아침부터

삼겹살을 굽네 목살을 굽네, 깻잎을 씻네 양념장을 찾느라고 냉장고문에 불이 날 판인데, 저는 그냥

차려 놓은 밥상에 앉기만 하겠다는 듯 그렇게 똘깍똘깍 마우스만 누르고 있다.

밖에 나가서 잠시 일을 보고 돌아오니 그 지경이라 딸래미 옆에 앉으며 "얘야, 동생은 저렇게 아침을

차린다고 저러는데 너도 같이 좀 거들지, 동생 한테 맡겨만 놓냐" 했더니, 이녀르꺼 딸래미 독침같은

말을 날린다. "엄마, 병조는 뭐 아침밥 좀 차리면 안 돼? 밥 차리면 손목이 부러지기라도 하는겨?"

 

순간 눈 앞이 깜깜해지며 독침을 맞은 자리에서 홧독이 퍼지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뭐라했기에. 그저

동생 밥 차리는데 너도 같이 먹을 거니까 같이 하면 좋겠다는 뜻이지...그러나 딸이 내 말에 화르락 타

오르는 건 이유가 있다.

 

딸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제 얼굴을 붉게 만들며 엄마에게 독침을 쏘는 까닭은 그 동안 제가 받은 불평등

때문이다. 아들놈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몹시 좋아하여서, 내가 순두부라도 끓일라치면 그걸 먹어보고

다음날 다시 순두부를 끓여달라 하며 제가 배우기를 즐겨 한다.

공공연히 반찬 만드는 것을 배우려고 달려드는 아들과는 달리 딸은 부엌에 들어 오는 걸 싫어 한다.

그럼 시어머님이 뒤에서 뭐라뭐라 말씀을 하신다.

"병조야, 사내자슥이 자꾸 부엌에 들어가면 꼬치 떨어진다"하며 은근히 딸을 보면서 싫은 내색을 하신게다

거기다 아버지는 어떤가. 말끝마다 기집애가, 기집애가 저런 것도 안 하고..하면서 눈을 부라리며 야단을

치니 그 동안의 억하심정이 내가 한 말에 폭발을 한 것이다. 나도 안다. 나도 어머님이나 스방이 무의식으로

요구하는 <딸이기 때문에>청소며 설거지며 밥 차리기를 해야 한다고 우격다짐 하는데 대해서는 쌍심지를 돋우며

게거품을 물지만, 내가  아침에 딸에게 말한 내용은 그런 차별적 내용이 아니지 않는가.

 

어찌나 화가 나던지 휑하니 부엌으로 나가버리는 딸의 머끄댕이를 쥐어 뜯어 놓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그러고는 점심 먹고 오후가 되도록 머라 말 한 마디 안하고 데면데면 얼굴을 냉랭하게 만들어 가지고 한랭전선을

그어 놓는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