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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과 어머니

황금횃대 2008. 3. 3. 00:22

밤길을 톺아 석봉은 헉헉거리며 사립짝 앞에 섰다

가뿐 숨을 조절하며 이마에 삐져나온 땀을 훔치며 쓰러져가는 초가를 그제서야 눈을 들어 쳐다본다

밤이 제법 이슥하였는데도 어머님의 그림자는 창호에 어리어 흐릿한 호롱불이 흔들릴 때마다 어머니의 어깨가 넌출거린다

또각, 또각, 또각, 칼날이 떡의 마지막 살을 가르며 도마 위를 건너가는 소리가 듣긴다. 왈칵, 문을 연다

"어머니, 소자가 왔습니다"

반가운 내색보다 떡 써는 손길을 마저 마친 후 눈길을 들어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어인일로 이 밤에 네가 여기 왔는가"

"소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왔습니다"

"공부를 마치다니?"

"이제 스승님으로부터 더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더냐"

"그럼 어디 나하고 시합을 해 보자"

"시합이라뇨?"

"나는 평생 떡을 썰었고, 너는 글공부를 마쳤다하니 네 실력을 보자꾸나"

어머니는 흐릿한 호롱불을 훅=3 불어서 칠흑 어둠을 불러다 놓는다

"너는 글씨를 쓰고 나는 떡을 써마."

똘깍,똘깍, 똘깍......어머니는 떡을 썰고

휙, 휘익, 꺾고, 돌고, 찍고, 누르고, 늘리며...석봉은 글을 쓴다

 

이하 이야기는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자시는 모르고 어중간하게 대애충 알고 있는 이야기.

 

어른들의 아침은 기침 소리로 시작된다.

곧이어 정해진 순서처럼 방문이 열리고, 밤새 채운 요강을 부시기 위해 화장실 문 여는 소리가 듣기고

아무라도 이상이 없으면 그 순서다.

그러나 더디 방문이 열릴 때가 있다

두 분 중 한 사람이 편치 않을 때다

어머님의 기침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져 나오면 벌써 집구석은 비상이다.

아침 상이 두 번, 세번 차려지고, 이것저것 밥을 대신할 것들이 만들어진다.

어머님이 감기에 걸리신지 닷새가 지났다.

여전히 입 안이 깔깔하신가 잘 안 드신다.

혹여 칼국수를 드실까 싶어서 동서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손칼국수 밀줄을 모른다. 아니, 그 일이 번거로와서 아예 배우지를 않았다.

맹물 끓여 파릇하니 호박 채만 넣어서 끓여서는 소금으로 단순하게 간을 맞추는

조금 식으면 콩가루의 구수한 맛이 적당한 소금간으로 연결이 되어 오래 동안 맛이 입안에 돌았다.

더운 여름 콩국수 끓여서 식혀놓고, 나물에 보리밥 비벼서 국수랑 먹으면 별미다.

봄동 겉절이를 동서가 국수 밀 동안 얼른 해놓고 커다랗게 밀어놓은 국수판을 착,착 접어 마른 도마위에 올렸다.

"미는 것은 못해도 썰 수는 있어"

동서에게 다 맡기는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나름 채 썰기에는 자신도 있어 국수를 써는데

아무리 썰어도 무 채 썰 듯 칼의 속력이 나지 않는다.

반죽이 무르게 되었나? 마른 밀가루를 뿌리고 접은 밀판 위에 왼손을 살곰살곰 움직이며 칼질을 하는데도

국수가닥이 어머님처럼 나오지 않는다. 어머님의 국수가닥은 얼마나 곱고 단단한지...썰어 보면 그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살림 야무지게 한다는 동서도 어머님만큼 못한다.

밀판이 자꾸 달라 붙는다.

 

입맛이 없으시면 어머님은 국수를 밀으셨다.

주먹만한 밀반죽 하나로 두렛상만한 밀판을 만드셨다. 나는 자꾸 빵구가 나서 애저녁에 칼국수 만드는 일에 손을 떼었다

뜨거운 땀을 흘리며 국수를 끓여주시면 맛나게 먹을 줄만 알았다.

이젠 어머님이 기운이 없어,  날아갈 듯 매시랍게 썰어놓은 칼국수를 구경도 못하게 되었다.

반찬 할 때 어머님이 부엌 문 앞에 동그마니 앉으셔서 이것저것 간섭을 하실 때는 못마땅해서 대답도 제대로 안 했다.

한 두해 살림 사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불안해서 부엌문 앞에 딱 버티고 앉아서 간섭을 하실까

어떨 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싫어서 어머님 못 보시게 등을 어머님 쪽으로 바짝 돌려세워 칼질을 했다

그러면 어머님은 내가 뭘 하는가 궁금해서 고개를 빼물으셨다.

 

제작년 시래기 엮을 때와 마찬가지로 동서랑 같이 만든 칼국수도 굵기가 엉망이다

연륜이 어디가나?

석봉이 엄니가 울 시어머님이면 동서와 나는 그길로 왔던 길을 되돌아  눈물 어룽진 밤길을 다시 밟아야 했을것을...

세상이 세상인지라 우린 �겨나지 않고...ㅎㅎㅎㅎ

근데 칼국수 미는 걸 배워야하나 말아야하나...국수방맹이는 이왕에 있는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