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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창녀

황금횃대 2008. 3. 15. 12:55

 

설거지하고 치우고 꼼짝도 않고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고래와 창녀를 보다

엉덩이가 저리다. 관절이 굳었다

이하 이야기는 퍼온 글이다

 

<오피셜 스토리>와 <올드 그링고>를 내놓은 아르헨티나 감독 루이스 푸엔조가 오랜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루이스 푸엔조는 <오피셜 스토리>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감독.

영어로는 'The whore and the whale',

두운도 딱딱 맞는 <고래와 창녀>는 한 부박한 떠돌이 여자의 삶에 고래라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포개 놓으면서 독한 사랑의 향내를 지평선 너머까지 분출한다.

사진작가 에밀리오에게 반해 그를 따라 함께 파타고니아로 향했던 창녀 로라. 그녀는 에밀리오가 눈먼 포주에게 자신을 팔아 버리고 떠나려 하자,다리 사이에 반짝이는 전구알을 끼고 마지막 탱고를 춘다.

담배연기 자욱한 파타고니아의 선술집에서 반도네온 소리에 맞추어 로라가 추는 '전구-탱고', 극중 '땅고'라 불리우는 이 관능적 춤이 사창가와 선술집의 비릿한 내음에서 탄생했음을, 그리하여 마침내 '춤추는 슬픔 감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사연을 여실히 느끼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파타고니아'라는 생태학적 지도와 '탱고'라는 보형물은 주인공에 버금가게 중요한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원시적 생명력,비행기가 날고 고래가 밀려드는 해안의 아름다움은 바로 창녀 로라의 내부에 숨겨진 자유와 열정의 지형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자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누를 곳을 눌러야 소리가 난다'는 반도네온이 로라의 육체를 형상화 한다면, 깊은 바다에서 불쑥 나타나 그 압도적인 힘과 크기로 사람들을 눌러 버리는 검은 고래는 바로 로라와 베라에게 영혼의 해방을 선사하는 또 다른 은유이기도 하다.

유망한 소설가였지만 결혼과 함께 자신을 잃어버린 2000년도를 살아가는 베라는 1930년대의 로라와는 정반대로 이제까지 심해에서 가라 앉은 채 살아왔다.

유방암 선고를 받은 베라는 이제 힘차게 수면 밖으로 나오고 싶어한다.

스페인이 아니라 굳이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가슴 한 쪽을 도려내고, 그녀는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베라는 말한다. 종양이란 도려내지 않으면 안에서 썩는 것이 문제라고.

그러므로 베라의 도려낸 가슴 한 쪽은 오래전 인간들의 작살에 귀가 뚫린 고래의 상처와 공명하면서 결국 로라와 베라의 생을 이어준다.

흑백 사진과 컬러 화면을 오가며, 운명적인 무드로 가득찬 <고래와 창녀>는

'탱고, 파타고니아, 반도네온' 등의 지극히 아르헨티나적인 기호들로 치장된 이국적 판타지의 자장에서 걸어 나온다.

영화는 구슬프고 절절하고 시적이며 이국적 향수를 자극하는 치명적인 매혹이 함께 한다.

- 심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