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 촌구석에는 봄여왕 행차가 있다고 골목마다, 집집 담벼락마다 난리법석이라오. 바닥에는 그린카핏이 깔리기 시작하고 심지어 낡은 덤불 밑에도 행여나 빠질세라 쑥방석이 놓이기 시작했지요
어제는 점심 볕에 쪼그리고 앉아 방석 몇 개를 들쑤셔 작은 소쿠리에 쑥을 옮겨 오기도 했어요. 벌써 쑥떡 해 먹을 생각이 방글방글 피어나는데 거기 시멘트와 아스콘으로 도배된 그곳에도 봄은 온답디까?
계획을 하고 그 동네를 가든, 불쑥 찾아가든, 하여간 그 곳은 북적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비하는 사람들, 매번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의 그림자 밖에 보이지 않아요. 갈수록 면역이 생기지 않고 새록새록 새로운 멀미가 생겨요.
우리가 한 때는 봄앓이를 심하게 하였을터인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빛바랜 기억이 되고 있어요. 아...그거 참 쓸쓸한 일이예요.
2008/3/26 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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