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을 바람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쑥을 뜯었다.
바람은 티검불을 날리게 하고, 마악 올라 오는 것들을 흔들었다.
이팝나무 가지를 지날 때는 제 몸을 가늘게 찢으며 통과를 했다.
기차가 지나 간다.
한 번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또 한 번은 반대편 방향으로 그들은 다녔다.
이십 년 전에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차에 꺽꺽 목이 메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 지난 일이다.
애기똥풀이 세력을 무진장 확장하고 있다. 꺾으면 노란 물이 나오는 애기똥풀
쇠어버린 냉이가 꽃을 매달고, 찢어진 비닐 사이로 풀들이 올라 온다
땅 속에서 무엇인가 들끓고 있는 중이라는 느낌을 흙을 보면 안다
딱딱한 흙들이 균열하며 부풀어 오르고 있다.
오늘은 쑥을 뜯지만 내일은 호미를 들고 저 흙들을 긁어 툭툭 깨부수어 부드럽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저절로 인다.
아침나절에 쑥을 다듬었다.
어머님은 아버님 드릴려고 일찌감치 쑥봉다리를 끌어 안고 그걸 다듬으신다
아버님은 눈이 침침하여 쑥 부어 놓은 옆을 지나치다 한 말씀 거드신다.
"그거 다 쇤거 아니여?"
저렇게 말씀 할 때 내 오장은 디집어진다.
아이구 아버님, 아직 이월(음력)도 채 가지 않았는데 쑥이 쇠다니요?
점점 시간을 가늠하지 못하신다.
시간 가늠이 어려우니 계절도, 시절도 그렇게 혼돈이 온다.
하루는 아버님이 연필과 자, 그리고 종이를 달라고 하신다.
갖다 드리니 종일 방안에 구부리고 앉으셔서 짬짬히 무얼 그리신다.
나중에, 무얼 그리셨세요? 하고 여쭤보니 아버님 젊었을 때 동네 지도란다.
여긴 대포집이고, 저긴 원준이네, 요 골목 끝집은 돌쟁이 이씨.....
지금은 죽거나, 이사가고 없는 집집을 그리시면서 이름을 써 넣으셨다.
나는 자꾸 속이 싸아 해 진다.
농협 가는 길에 방앳간에 들러 쑥과 쌀을 놓고 온다
"오후에 찾으러 올게요..."
생쑥을 갈아 시루떡으로 쪄 주세요, 흰 고물 얹어서.
상신떡방앗간 제철이 아버지는 흔쾌히 맛있는 떡을 만들어 준다.
저물 녁에 떡을 찾아와서 드리니 어머님과 아버님이 맛있다 소릴 하시며 정말 맛있게 드신다.
딸은 오늘 과 엠티를 가고, 아들은 늦게 올거고, 고스방은 개띠 친구들 계모임을 갔다.
점심을 먹으러 와서 장부를 챙겨갔다.
총무를 맡았는데 장부 정리는 맨날 내가 한다.
"장부 정리도 못하는데 말라꼬 총무를 맡았세요"
계산기를 톡톡, 토도독, 톡` 하고 '='을 치면서 나는 기어이 장부 정리하는 유세를 부린다.
"원래 장부정리는 총무 비서가 하는고야"
'총무 비서 웃기고 있네 흥!'
나는 속으로 한 번 더 유세지랄을 떤다.
부모님들은 일찌감치 자리에 드신다.
나는 며칠 쌓아 놓은 신문을 찬찬히 훑어보고 대운하 기사는 스크랩 해 둔다.
읽어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의 기사들이 여기저기 짱 박혀 있고
안동 시골의사가 쓴 칼럼을 보면서는 꺼이꺼이 목이 메였다.
그러고 어느 지면에서 아이 우유를 훔치다 들킨 마흔 셋의 여인 이야기를 읽고는 대놓고 소릴 내며 울었다.
생목이 오르고 신물이 게륵게륵 올라 온다.
열무김치에 된장 퍼였고 고추장 한 숟갈 발라서 쓱쓱 비벼 먹으면 이 신물을 주저앉힐 것 같다.
마음은 열 번도 더 일어나 혓바닥에 매푸한 맛을 안기는데 몸은 그 자리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린다.
그러다가 신문을 착착 접어 놓고 컴을 켜고 이렇게 또 주끼고 있다.
바람이 분다.
뒤안 살구나무는 언제 꽃을 틔울라는고
화장실 변기 우에 앉아 살구나무 가지가 보이는 창으로 열심히 눈길을 주지만,
나무가지는 바람에 그저 몸만 잠깐 흔들 뿐.
그러나 머잖아 햇살이 환한 날,
그것들은 일제히 팝콘처럼 터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