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와 딸
다른 집에는 딸하고 에비하고 참 살갑게 잘 지낸다고 하등만, 우리집은 우째 웬수사이같다.
아무리 내가 사이에서 중재를 하고 여기서는 여기 듣기 좋게, 저기서는 저기 듣기 좋게 오만 아양을 다 떨어도
둘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딸의 주장은 <아빠가 무엇이든 받아 들이지 않고 야단부터 친다는 것>이고, 에비의 주장은 <밥 먹고 즈그들이 하는게 뭐냐?>다
제 손으로 하는 것은 없고 모두 팽게쳐 놓는다는 말이다.
며칠 전에 상민이가 과 엠티를 갔는데 내에게는 문자로 도착했다고 기별을 했는데 즈그 아빠한테는 전화 한 통을 안 했다.
허기사 전화하면 살갑게 받아 주지도 않고 그러니 내라도 어디 나가면 전화를 잘 안 하게 된다. 맨날 야단 맞으면서도
안 한다. 그게 또 딸 한테도 유전이 될 줄이야.
삼일을 나가 있으면서도 전화 한 통 안 한다고 난리가 났다.
딸을 볼 때마다 밥상머리에서도 그러구 나한테도 상민이 이야기만 하면 <가시나가 전화 한 통도 안 한다고>인상을 찡그리고
양미간에 협곡을 만들어서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주어 가시를 꼽아서는 얘기한다. 듣기 좋아라 하는 변명도 한 두번이지, 매번
거기에 대꾸를 할려니 나도 입이 아픈 노릇이고 짜증이 날 판이다.
어제 하루종일 동산터 고조할아버지와 시아즈버님 산소 사초작업을 했다.
밥 해다 나르고 물건 준비하고..그러는데 다리에 피가 꺼꾸로 솟는데 밤에 와서 한다는 말이 또 저 얘기다
"니가 새끼들을 감싸고 키워서 네가지가 없다는 둥, 청소도 안 하고, 밥 먹고 학교만 가면 다냐는 둥..... 또 얘길한다"
"아이, 그럼 애들이 아침에 밥 먹고 학교 가기 바쁘지, 마당청소까지 하고 가야 해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자고 일어나서 지들방 청소 하는 꼴을 못 봤네"
"씻고 밥먹고 가기에도 바빠서 허덕되는걸 나중에 할 형편되면 하겠지"
"지금 안 하는 새끼들이 그 때가서 엉가이 잘 하겠다"
천년만년 자식새끼 끼고 살 것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가마골 농사지은 보릿단 다 져다 나르고 공부하고, 소 꼴 두 망태기 뜯어 놓고서야 숙제하고, 겨울에는 나무 해다대느라고 공부가 뭐야...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두번 듣는 노래를 또 부르고 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그렇게 잘 하고 집 구석 일 잘 거들고 자란 위인이 요새는 왜 아무것도 안 하나. 어릴 때 그야말로 지름끼 좔좔 흐르게 모범생이였다면
지금도 그래야지. 일어나 이부자리 개는 꼴을 나도 못 봤다. 어쩌다 명절에 청소기 두 번 돌려주는거? 집구석 먼지 하나 없이 청소 했다는 자랑을 요새도 해 보지 그래, 물 한 잔 떠 오는 것도 꼼짹이기가 싫어 넘한테 시키고 보는 사람이 엇다 잘났다. 엇다 잘 한다....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그렇게 염장을 지르고는 팽 돌아누워 잔다. 화가 심정으로 옮겨간다. 가심이 벌렁벌렁한다. 마음 같아서는 그자리에서 자지러졌으면 좋겠다. 어쩌나 보게. 눈 하나 깜짝을 할까. 옷을 걸치고 바깥으로 나온다.
늦게 학교에서 돌아 온 아들이 마루에서 잠깐 티비를 보다가 내가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어딜가느냐고 자꾸 묻는다.
마을 회관 들마루까지 씩씩대며 걸어갔다가 추워서 다시 들어왔다.
깜깜한 밤에, 어데 술 한잔 하러 갈 수도 없는 내 신세가 처량천만이다.
마루바닥에 얇은 패드 한 장 깔고 잤더니 온몸이 찌부덩하다. 새벽녁에 화장실 가던 딸이 이불을 갖다 덮어준다.
아침 밥을 차리고, 저는 일 나가고...한 마디도 안 한다.
사는 일, 누구에게나 힘들다.
주는 밥 먹고 학교만 가는 아이들도 12시간 딱딱한 책상 앞에 앉아 있으니 힘들고
뒷돈 대 주느라 밥 한 숟갈만 떠 넣으면 배끝에 나가 눈에 불켜고 돈 버는 니도 힘들고
삼시 세끼 밥 차려대며 치닥거리하는 나도 힘들고
다들 힘들다.
근데, 왜 너만 힘들다고 유세를 떠냐.
오오오오오냐! 꾹 다문 저 입이 언제쯤 열리는가... 내, 두고 볼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