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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황금횃대 2008. 4. 16. 19:48

고스방이 어제는 채소차에 혹해서 알타리무를 넉단, 쪽파를 두 단, 그리고 대파를 두 단 사왔다

어젯밤, 다듬어 줄테니 알타리 무 가져 오라는걸 내가 피곤해서 못 했다

아침 먹고 잠시 앉아있으니 어머님이 문을 여시고는 날보고 아버님과 같이 김천 병원에 다녀 오란다

아침 먹고 알타리 다듬어 놓고 한숨 자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서둘러 씻고는 시동생 차를 불러서 아버님과 같이 김천제일병원으로 간다

비뇨기과 진료다

전립선비대는 물론이거니와 염증까지 생겨서 그렇다고 검사하고 약 가져 가고는 다음주 또 오란다.

아버님과 같이 계산하러 , 검사 하러, 주사 맞으러, 약 타러..같이 다닌다.

그 와중에도 아버님은 자주 화장실에 가시고.

지난 십이월에 초음파검사까지 했는데 결과 보고 치료 하셔야 된다고 말씀 드렸는데도 필요없다 하시더니

어제밤은 고생을 많이 하셨나보다. 오늘은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잘 따라 오신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겨우 병원일이 끝나다

내려와 도개추어탕 집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오랜만에 산초(젯피가루)가루 팍팍 쳐서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을 훌훌, 뜨겁게 먹었다.

애인이 그랬다 날보고

"뭘 먹을 때, 정말 평온한 마음으로 음식 먹는 걸 보면 너무 이쁘다고"

"오호호호호호...그랬어요? 제가 좀 그렇지요. 먹는 일에 몰입을 하니...호호호. 먹는 걸보면 만사 걱정이 사라진다니까요."

어쩌겠는가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단순한걸.

 

집으로 와서 오이을 쪼개서 절여놓고는 양샘이 부탁한 떡을 찾으러 가서 떡집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양샘 병원 다녀오면 부쳐야지.

고스방은 그걸 택배로 부친다니까 대번 양샘한테 (양샘없다고) 이런다. 꼰질러야지

"하이고, 선생이라카디 영 쪼뱅이네....이왕 할거 좀 일찍 와서 쑥 뜯었으면 쌀 담가놨다가 바로 해가면 될것을...택배비는 어데서 그저 나오남?"

떡방앗간까지 태워 주길래 얼른 떡집에 들어가서 떡 한덩이 싸가지고 나와 고스방 입을 틀어막았다.

"맛있네..."

 

집에 와서는 가마골 밭에 부추를 심으러 갔다

며칠 전 정미소 뒷뜰에 있는 버려진 부추 뿌랭이를 한 봉다리 캐왔다.

개얌나무 심어 놓은 옆에다 오랜만에 호맹이질을 하면서 부추를 심었다.

덩어리진 흙을 호맹이 뒷대가리로 턱,턱, 부수어 깰 때, 그 때의 마음도 추어탕 훌,훌, 뜨겁게 마실 때와 같은 기분이다.

속이 시원하면서도,  훠언 하면서도, 걱정이 없고, 그저 단순하게, 마음이 한 가지 색으로 물이 든다.

농사는 잘 못 지어도 그 기쁨은 안다.

 

부추를 심고 밭 모퉁이에 있는 미나리깡으로 갔다

트렉터로 로타리 친 밭흙은 팥고물 같다.

발로 밭고랑을 밟고 가면 푹신한 스폰지처럼 내려 앉아 팥고물에 발자욱이 생긴다.

지금은 이렇게 맬간 밭뙈기가 한 두차례 비만 내리면 푸른 초장으로 바뀌겠지.

얼마나 나는 그걸 쳐다보면 밭 맬 걱정을 할찌..

불미나리가 뾰족뾰족 올라와 제법 뼘가웃만큼 자랐다.

하나 하나 칼로 도려내어 흙을 탈탈, 털때의 기분.

이 역시 뜨거운 추어탕을 훌, 훌, 불면서 먹을 때와 같은 기분이 된다.

속이 시원하면서도, 훠언 하면서도, 걱정도 없고, 그저 단순하게 마음이 한 방향으로 흘러 간다는 것.

얼른 집에 가져가 다듬어서 식구들에게 봄미나리향을 전해줘야지..하는.

 

돌아 오는 길, 기차길 옆 산에는 다래순이 뾰족족 나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