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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이야기

황금횃대 2008. 5. 12. 22:36

 

----메타세퀘이어 나무길

친정 엄니의 생일은 단오날이였다.

어데서 물어보았는지, 지나가며 시주받아 가던 시님이 그랬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단오날 생일은 엄니 인생에 도움이 별로 안된다고 해서 날짜를 양력으로 바꾸었다.

땡겨도 한참을 땡긴 날이지만, 덕택에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날을 촌구석에서 보내지

않고 매번 동촌 유원지나 대구 시내에서 보낼 수있었다.

무슨 날이든 어디 여행가는 법이 없는 우리집.

병조에게 <느그들이 만일 외갓집이 대구가 아니고 촌이였다면 어쩔뻔했어?>하고 물으니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개촌놈 되는거지 뭐>이다.

 

엄마의 칠순인데 옛날식으로 하자면 동네 잔치를 벌려야하지만 요즘은 아무도 안 그런단다

달달이 형제들이 계돈 부은 돈을 찾아서 온 식구들이 여행을 간다.

작년인가 제작년인가 아버지 칠순 때는 설악산을 가고 올해는 전라도 담양으로 낙착을 봤다.

 

 

 

------ 뛰어 볼까 폴짝`

부산 사는 둘째동생식구들과 우리집, 그리고 큰동생 식구, 이렇게 열 네사람이 빌린 봉고차에

타고 대구에서 출발하고, 수원사는 막내네는 직접 차를 가지고 담양으로 찾아오기로 했다.

오랜만에 88고속도로를 타고 달린다.

해인사 나들목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옛날 고향가는 길을 가늠해 보고, 지리산 휴게소에서

고구마채 튀김을 사서 온 식구가 오도독 씹으며 지리산을 넘어간다.

 

 

------ 엄니 칠순 생신 축하해유

담양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 들어간다.

동네 끄트머리 밭머리에 팬션이 있다.

커다란 거실 하나에 작은 방이 딸려 있고, 입구가 다른 이층도 같이 쓰기로 했단다

거실을 삥 돌아서는 진짜 미술품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있다.

김점선의 그림도 두 점이 있다.

주인이 미술에 취미가 있는가. 작은 책꽂이에는 옥션미술품 경매 몰록이 철해져있고, 구석

구석에 청동 조각상이 서 있으며, 미술 계간지와 월간지가 꽂혀있다. 희안한 팬션이다.

이거이 진품인가 싶어 가까이 눈을 갖다 들이댔는데 모두 사진이 아니고 직접 그린 작품들이다.

 

 

 

----- 금성 산성

막내는 호남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혀 멈춰섰단다.

천천히 밥 먹으면서 오라고 해놓고 우리는 메타 가로수길과 금성산성에 다녀왔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막내올케가 잔뜩 화가 났다.

엉거주춤한 봉고차에 아이들 먼저 내리라 하고 어른들이 내리는데 먼저 내린 엄마가 뭐라하신다.

"쟈는 어른을 보고도 인사도 안 하노"

일곱시간이 걸린 길에 기다린 시간에 배고픔까지 겹친 막내올케의 입은 댓발이나 나왔고

엄마의 말에 돌아 온 대답이 <배가 고파서요>였다.

순간 분위기는 찬물이 아니라 얼음물을 끼얹은 듯 냉랭해졌다.

그렇게 말하고는 올케는 즈그차로 팽하니 가버린다.

이런 니미럴, 무슨 이런 ...경우가.

 

 

 

------ 멀리 보이는 담양댐

숙소 문을 열고는 재어 온 고기를 굽고 밥을 앉히고 부산을 떤다.

막내동생은 어쩔 줄 몰라하며 구운 고기를 갖다 나르고하며 처자식을 먹인다.

그렇게 먹는 동안 나는 딸기를 씻어서 아이들을 준다.

고기를 먹더니 휑하니 나가버린다.

큰동생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온 걸 참고는 저녁을 바깥 식당에 가서 먹자고 제의을 한다.

 

 

------ 대나무 박물관

우리가 아이들을 다 데리고 동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다 차려 놓고 나자 막내 부부가 들어왔다

동생이 올케를 설득했을거라.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주둥이는 댓발이나 튀어 나왔고, 나는 아이들만 몰아 놓은 밥상에 앉아 막내네

아이들에게 밥을 먹였다. 제일 어리지...가희와 가연이가.

아이들은 어마이가 부어 있으니 밥을 먹으면서도 눈치를 본다.

가희야말로 눈치구단 아닌가.

얼른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는 가자고 해서 아이들만 데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른들은 술도 한 잔하면서 서먹한 분위기를 풀어서 오라고.

 

 

------ 대숲

숙소에 돌아와서는 시디를 틀어놓고 아이들과 우리 나이트클럽 놀이하자 하면서 조명을 약하게

켜놓고 신나게 놀았다. 한참 뒤에 엄마와 아버지, 동생 식구들이 온다. 우리가 노는 것을 보고는

눈이 똥그래졌다.

같이 놀았다. 그런데 막내네는 둘이 이층으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막내 동생만 상황의 중간에 끼여 어쩔 줄을 몰라하며 왔다갔다한다.

딱하지..그런 걸 보면.

다 같이 즐거운 시간을 갖자고 여행을 떠났건만, 한 사람 때문에 모두 가슴한켠이 아리다.

 

 

------ 소쇄원 꼭대기 방

막내네는 창원에 살다가 막내가 르노삼성으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수원으로 이사를 갔다

막내 올케도 어지간히 똑똑하고 입만 가지고 일 하는 스타일인데 거기 사람한테는 못당하겠나보다

환경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거기서 너무 살기가 힘들다고 동생에게 다시 회사 그만두고

내려가자는 말까지 나왔단다.

우울증까지 와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여행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 다음날 동생하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왜 그랬냐고 물어볼테니 올케 바꾸라고 하니 전화를 안 받겠다고 한다. 동생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심하지는 않는데 가끔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단다.

상민이 생각이 나서 겁이 났다.

나중에 올케가 다시 전화가 와서 그 당시 자기가 서운했던것을 펑펑 울면서 이야기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생해서 내려왔는데 우리는 너무 잘 놀다 오는 분위기가 즈그들한테 오느라고 고생

했재...이 말 한마디도 안 하더라나?

어이구...잘났다. 우리가 차에 내리기도 전에 지가 먼저 톡 쏴부치고 가놓구선 외려 우릴 원망한다.

엄마가 <니는 와 인사도 안하노>하는 그말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두번의 뇌출혈과 한 번의 수술로 말투가 엄청 공격적이다.

아버지에게도 며느리에게도,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우린 엄마가 옛날에 고생한 것을 기억하기에 엄마의

그런 공격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아버지도 그렇고. 그런데 그게 그날 걸려버린 것이다.

저도 사는기 피곤해서 그렇겠지..평상시 같으면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었을텐데

길은 밀리지  배는 고프지.

그러게, 의식이 족해야 체절을 안다더니...

 

돌아와 막내 올케랑 통화를 하면서 서운했던게 있으면 풀으라고 말했다.

놀러야 다음에 같이 또 가서 재미있게 놀면되구..

막내 동생 바꾸라해서 상민이 갔던 약국을 알려주었다.

다들 잘 살려고 아둥바둥하는데 영혼은 자꾸 피폐해가니..

 

나는 정말로 충격을 받아서 한 동안 공황상태이다.

포도밭에 일하러 가서 종일 해를 바라보며 일을 하면서 생각을 한다

사람은...말이지

사람이란....말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