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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에 안개가 자욱하다>
고단한 농사꾼 하루 일 쉬라고 새벽부터 비가 철철철 내린다. 가뭄끝 단비라 여간 반갑지가 않지. 밭에 뿌려놓은 들깨모씨도 겨우 눈 떠서 머리를 땅 밖으로 내밀었는데 어찌나 날이 가물턴지 자라지도 않고, 고냥 고대로여.
해가 많이 길어져서 7시가 넘어가도 밭 귀퉁이 앉아 일하긴 좋아.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매다보면 가뜩하나 안 좋은 손가락이 비명을 질러. 그래도 밭매서 풀 뭉테기를 길가 쪽으로 던지면서 훤해진 밭고랑 보면 뿌듯햐. 농사 짓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 같을 땐 바로 이럴 때여.
이것만 있나? 몽글몽글한 들깨 한 옹큼 쥐구 슬슬 밭에 씨뿌릴 때는 저 단단한 것이 언제 몸 불어 생명의 운을 틔울까 초조하지만, 그게 수북 뿌려져 일제히 고개를 빼물고 하늘 쳐다보겠다고 나올 땐 장관이여. 제 몸을 누르고 있던 흙덩이를 여엉차~ 밀어 올리며 마치 사람들이 힘 합쳐 바위덩이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흙뎅이를 들어 올려. 풀 매다 그거 쳐다보면 이뻐서 고놈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지.
어느 새 느릅나무도 잎들이 다 컷네. 제일 늦게 나와도 무성할 때는 일찍 나온 것들이랑 색깔이 차이가 없어. 그만큼 열심히 초록피톨을 물어 나른게지. 늙은 느릅나무도 저렇게 발바둥을 치잖여. 나도 아픈 눙깔에 안약이나 넣고...오늘은 비 핑게로 좀 쉬고 내일부터 또 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