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모 심는다고 벌써 일주일도 넘게 밭에서 살아요
비가 오니까 들깨모가 얼마나 커버렸는지 꺾어서 심을래니 땅도 많이 파야하고 힘이 들어요
그런데 밭을 장만해 놓고 심는게 아니구 한 뙈기 풀 매서 그 다음날 심고, 오후에 또 한 뙈기 풀매야하고
바랭이가 세력이 어찌나 왕성한지 문어발식 경영에다 힘까지 쎄서 이놈의 바랭이가 사람 이겨먹을라고 해요
그런데 아랫밭은 논을 밭으로 만들어 놓은거라 피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그것은 바랭이처럼 가늘지도 않고
대궁이 굵직굵직한게 그 속에 앉았으면 사람이 안 보여요.
홍성댁 땡볕에 풀 매느라 가슴고랑으로 땀이 줄줄 흘러 내렸을거라는거 나는 안 봐도 다 알아요
일 하러 갈 땐 브라쟈도 벗고 가요. 이 나이에 볕에 앉아 일하면서 그거 입고 가슴 땡그랗게 올리 붙일 정성도 없고
그래서 그 갑옷을 휙 벗어 던지고 가는데, 세상에! 그거 하나 벗어도 엄청 시원해요
어쩌다 그냥 입고 가서 일하고 와 저녁에 샤워하면 태양이 걸어간 길이 그대로 찍혀요
태양이 걸어가는 길을 황도라고 하지요. 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런 길 말고, 태양은 몸 등판에다
브라쟈 끈자욱따라 가는 샛길도 만든답니다 모르셨지요?
홍성댁이도 참깨구출 작전을 편다고 했는데, 나도 며칠 동안 참깨일병구하기 작전을 수행했지요. 바랭이와 달리
피는 잘 뽑히지를 않아서 좁은 골에 쪼글시고 앉아 낫으로 베요
낫질 하는것도 급수가 있어요. 첨에는 풀을 한 웅큼 잡고 낫을 잡아 돌리는데, 그렇게 하면 손아귀도 아프고
팔, 어깨까지 아파서 저녁이 되면 굴신을 할 수가 없어요. 낫질은 왼손으로 풀을 잡으로 가는척 하면서 낫으로
풀을 감아 부쳐야 해요. 감아 부치는 찰나에 손목에 힘을 주면서 탄력받은 낫날이 돌아가는 바람으로 풀을
베는 거라요. 이거는 실습을 하면서 가르치면 더욱 실감나는데, 말로만 하려니 표현이 잘 안되요.
누구는 영어에 올인을 하라고 목구멍 핏대를 올리는데, 가마히 보면 내 나라 말로 낫질 하나도 역동적으로
표현하기 힘드니 혀끝에 끌끌..소리가 저절로 매달려요
한 웅큼 벤 풀을 비닐 깔아 놓은 감나무 옆에 놔요. 그럼 오후가 되면 시들배들 말라서 풀이 즈그들끼리 하는
말이 들립니다. "에고오오옹~~~언제 우리가 싱싱했더냐???" ㅋㅋ
이렇게 죽을 똥 살똥, 불타는 저 태양이 언제 산 너머로 넘어갈꼬...하며 열심히 풀을 매고 있는데 띨렐렐레레래
하고 전화기가 울려요 받아 보니 고스방이래.
"야이 상순아, 나 지금 논에 약치러 갈라는데 논으로 고무장화 좀 갖다 줄래?"
"나도 지금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집까지 차 가지고 갈려니 길도 공사를 하고 해서 차 돌리기도 마땅찮고..."
"나는 뭐 집에 안가고 길에서 장화 주워가나?"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안 갖다주면 있는거라곤 삐지는거 밖에 없는 고스방이라 드러바서
생각은 그렇게 해도 몸은 호미자루 땅에 놓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요
집에 가서 물장화(노란 고무장화) 찾아서 논에 가니까 고스방이 먼저 논에 와 있어
아침에 논에 수멍아구지 열어서 물 대놓은 것을 내가 깜박했어요
풀 매느라 정신이 없어서 논에 물 대놓은 것은 생각도 못했지요. 고스방 저도 물 대 놓은 것은 알지만 논에
가 보지 않고 있다가(내 생각에는 지도 잊어 먹은 것 같아) 물이 철철 넘어서 잘못하면 논뚝 다 까질뻔 했다고
노발대발 승질이 나서 장화 가지고 논두렁 걸어가는 내게 욕을 해요.
고스방은 맞은편 논두렁에 있고, 나는 반대편 논두렁에서 서로 소리가 안 듣기니 큰 소리로 괌을 질러요
"씨이팔 아침에 수멍아구지 열어 놨으면 물이 넘치나 어째나 와 봐야지 논둑 나가면(=터지면) 우짤뻔 했어"
"나도 밭에서 일하느라고 바빠 죽겠는데 내가 열어 놨으면 당신이 한번 와보고 닫으면 되지 그걸 꼭 내만 하란 법이 있어욧!"
"뭐시라! 조오팔,내가 그거 할 여가가 어디있노"
"그거 차 타고 와서 잠깐 볼 여가가 없도록 일하면 내한테 돈이라도 마이 갖다 주든동. 그것도 아니면서 왠 괌은 그렇게 고래고래 질러쌌노"
나도 속으로 욕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도 같이 욕하는 종자가 되기 싫어서 꾸~욱 참아요
논둑 보수 공사 해놨는데 가보니 괘안아요. 물도 안 넘었고 논둑이 무너지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난리지랄이여.
속으로 '이씨, 괜찮쿠만 괘히 그래쌌네 궁시렁..'
장화를 고스방 차 옆에 휙 던져놓고 오토바이 대가리 돌려서 다시 들깨밭으로 오는데 농로길 채 벗어나기도 전에
하도 부애가 나서 침을 화악 돋궈서는 고서방 쪽으로 확 뱉았지요. <오늘 재수에 옴 붙었어! >하는 심정으로다.
근데 침 뱉구 난뒤에 혹시 고스방이 봤을까봐 고개를 돌려 확인을 하려는데, 그러다 눈 마주치면 날 잡으로 올까바
돌아가는 내 모가지 억지로 잡아 돌리고는 오토바이 속력 한껏 올려서 그자리를 벗어 났재요 푸다다다다다=3=3=3=3=3=3=3
그누무 승질머리 언제쯤 절인 배춧잎사구처럼 나긋나긋해질까...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