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닳도록 풀을 매고 등때기에 땀띠가 나도록 햇볕과 싸와서 밭을 다매고 들깨모를 다 심었다. 상민이는 양산을 쓰고 와서 한 손에는 양산을 들고, 한 손으로 호미질을 해서 밭을 맨다. 그렇게 하면 좀 시원허냐? 했더니 훨씬 시원해 한다. 허기사 그늘이 생기니까.땡볕에 앉아서 풀매던 내가 슬쩍 양산 밑 그늘로 들어가니 훨씬 덜 덥다. 그러다 바람 한 줄기 불어 오면 음메나, 시원하기조차 하다. 상민이에게 너는 양산만 들고 있으면서 엄마 등때기에 그늘만 만들어줘. 밭은 내가 맬텡께. 양산을 받쳐 든 딸과 그늘과 밭매는 엄마는 하나가 되어 마치 삼종 세트같다. 같이 움직인다. 내가 방향을 틀어 왼쪽 풀을 매면 그늘도 따라 오른쪽으로 돌고, 딸의 몸도 그렇게 돌아간다. 오른쪽으로 팔을 뻗으면 반대 방향으로 그늘과 딸이 움직인다. 그렇게 밭을 매다가 개미집을 건드렸다. 허리가 잘룩한 개미들이 화들짝 놀라서 비상게엄령을 선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페르몬을 교환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 번 더 툭 건드리며 긁었더니 개미집이 와르르르 부서지면서 알과 알에서 깬 유충들이 드러났다. 알은 쌀알처럼 생겼고 유충은 투명하다 못해 눈이 부신다. 갑자기 햇볕 아래 나오니 작은 유충들이 꼬물꼬물 움직인다. 어른 개미들은 알을 하나씩 물고 또 어디론가 가고 있다. 딸과 나는 호미자루를 놓고 한참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에 지진이 나거나 천재지변이 생기면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 개미같겠지?
박살 난 개미집에 물 한 바께쓰 갖다 부으면 홍수가 난거랑 마찬가질게구.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다가 또 바랭이를 긁어 댄다. 모래땅 호미끝도 튕겨 나오는 그런 땅에 바랭이는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마디마디에 새 뿌리를 내리며 땅과 밀착한다. 저 척박한 환경에도 악착같이 살아가는 바랭이를 보면 사람살이가 저절로 반성이 되지. 어디든 저 하기 나름이야.
점심은 고속도로가 위로 나있는 굴속에 들어가서 향정살을 구워 먹었다. 굴 안에는 언제나 서늘한 바람이 분다. 상민이와 같이 고기를 구워 밭에서 뜯는 상추에 쌈을 싸서 먹는다. "엄마, 나 밭에서 일하고 이렇게 고기 구워 먹는거 엄청 하고 싶었어" 바삭하게 구워진 고기를 연신 딸 앞에 내려 놓는다. 땡볕에 즈그엄마 힘들다고 얼굴 새까맣게 타 가면서 밭일을 거들어주는데 이깟 향정살이 문제랴.
아플 때 생각하믄 지금 이런게 너무 고맙지. 공부? �네요. 부모의 고달픔을 알고 밭 가운데 퍼대지고 앉아 같이 낄낄낄 웃으며 옆에서 이야기만 주고 받아도 좋아. 그 때, 그 때, 그 때를 생각하믄 말야.
고스방한테 전화해서 굴다리 밑으로 점심 먹으로 오라했더니 참외를 오천원어치 샀다며 달랑달랑 들고 굴 안으로 걸어온다. 고기를 구워 쌈을 싸서 입 안에 넣어주니 세상에 이 보다 더 맛있는게 어디 있을까 하며 받아 먹는다. 어제 논바닥에서 싸울 때 생각하면 입 안에 들어 가는 것도 빼앗고 싶지만, 어제 저녁에 그렇게 고함질러서 미안했는지 밤에 들어 올 때는 내가 좋아하는 호떡빵과 음료수를 사왔다.
딸래미가 옆에 앉아서 쳐다보며 웃는다.
굴 안에서 딸과 같이 한숨 자고 다시 밭에 가니 개미집은 언제 부서졌냐는 듯 말끔히 단장이 되고, 개미는 두 개의 구멍을 파고 부지런히 들락거린다. 생은 이렇게 어제의 부스럼과 허물과 상처를 지우면서 오늘을 살아간다.